파문 부른 ‘최태민 현몽’ 교회 예언자적 기능 회복 돼야

입력 2016-11-09 21:25
러시아 출신 화가 마르크 샤갈(1887∼1985)의 작품 ‘선지자 이사야’. 그리스도인은 성경 속 선지자와 예언자들처럼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마지막(계 22:13)’이 되시는 하나님의 시간을 의식하며 이 땅을 살아야 한다.
최순실 국정농단 파문과 그의 부친이자 사이비 교주인 최태민의 행각이 드러나면서 한국교회 안에 자성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그 중엔 교회의 예언자적 기능 상실을 우려하는 지적이 많다. 구약 예언자들이 이방신을 섬기던 열왕 앞에서 경고 메시지를 외쳤던 사명을 오늘의 교회는 잃어버렸다는 탄식이다. 예언자들은 ‘맡겨진(預)’ 말씀을 대언했다. 그들은 또 묵시와 계시, 이상으로 하나님의 뜻을 나타냈다.



예언과 묵시(새물결플러스)는 이른바 묵시문학이나 묵시종말론이 사회적으로 박탈당한 이들에게서 비롯됐다는 해석이 주류를 이루고 있는 성서학계에 반론을 제시하는 책이다. 이 분야에서는 명저로 통한다. 미국 버지니아신학교 교수인 저자는 묵시문학의 출현이 ‘억눌린’ 계층에서가 아니라 예언자와 제사장 등 주류 종교 권력집단에서 비롯됐다고 논증한다.

묵시문학이란 성경에 포함돼 있는 유대 종교문학의 한 유형이다. 묵시는 ‘폭로’ ‘계시’를 뜻하는 그리스어 ‘아포칼립시스(apocalypsis)’에서 유래했다. 주전 2세기에서 주후 200년 사이의 종교적 박해와 전란(戰亂) 등 민족적 수난 중에 기록됐고, 악이 만연된 이 세상과 다가오는 세계의 구별을 시도한다. 세상의 종말과 최후 심판, 메시아 도래와 성도의 구원, 하나님 나라의 최후 승리 등을 다루며, 자연계의 이상이나 환상, 숫자, 동물 등에 의한 우의(寓意)나 천사와의 대화 등의 형식을 빌려 그려내는 것이 특징이다. 성경의 다니엘서와 요한계시록이 대표적이다.

성서학계에서 묵시문학은 소외 계층의 산물로 이해돼 왔다. 억눌린 자들이 그들의 염원을 기록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저자는 이를 뒤집고 묵시가 당시 지배층의 보편적 이데올로기였다고 주장한다. 오늘의 상황에 빗대자면 예언자적 목소리를 내는 그룹이 진보 진영의 교단이 아니라 보수 교단에 더 많았다는 말과 같다.

번역자인 이윤경 이화여대 교수는 “신자들은 묵시 문헌을 작성한 사람들이 가장 보수적인 종교 지도자들이었다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며 “이는 묵시가 사라진 오늘의 한국교회에 중요한 시사점을 던진다”고 말했다.

저자는 그의 새로운 ‘묵시문학관’을 성경 본문을 통해 구체적으로 해설하고 있다. 에스겔(38∼39장)은 하나님의 도구인 곡에 대한 심판과 멸망, 이스라엘의 회복을 말한다. 스가랴(1∼8장)는 여호와께로 돌아가자는 메시지와 8가지 환상, 굳어진 마음에 대한 경고 등을 얘기한다. 요엘서는 메뚜기 재앙과 회개의 촉구, 여호와의 날을 언급하는데, 작금의 한국 상황을 방불케 한다. “너희의 날에나, 너희 조상들의 날에 이런 일이 있었느냐”는 탄식이 나온다. 주님은 즉각적인 회개를 명령하고 옷 대신 마음을 찢으라고 요청한다(욜 2:13).

김회권 숭실대 교수는 “책을 읽다보면 하나님의 부재로 인한 영적 황무함을 뼈저리게 느끼는 오늘날 독자들에게 묵시문학적 전망이 요청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며 “묵시문학은 역사로부터의 도피를 조장하기보다는 하나님의 임박한 간섭을 갈구하고 촉발시키는 역사 참여적 신앙을 장려한다”고 소개했다. 논문 형식의 책은 구약 연구자들에겐 주목할만하다.

어제의 예언, 오늘의 복음(규장)은 절망의 세대에 선포되는 희망의 복음을 강조하고 있다. 대표적 강해설교자인 이동원 목사가 이사야서를 풀어냈다. 이사야 선지자는 남유다의 웃시야와 요담, 아하스와 히스기야 등 네 왕을 거치며 예언했다. 그의 메시지는 앗시리아와 바벨론의 위협에 대한 경고였다. 동시에 미래 희망도 전했다.

책은 오실 메시아를 선포한 이사야의 ‘전언’이 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가를 강조한다. 저자는 “우리 사회의 고질적 부패와 비윤리적 사건에 기독교인들이 관여되어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면 지금이야말로 통렬하고 진지한 회개가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신상목 기자 smsh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