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중구 남산 자락의 신라호텔 주변으론 조선 태조 때 조성된 성곽이 둘러져 있다. 고급 호텔이 들어설 정도의 전망을 뽐내는 곳이다. 성곽 아래 비탈에 형성된 다산동(신당동에서 분리)은 아이러니하게도 문화유산인 돌담 탓에 개발이 제한되며 도심의 낙후 지역이 됐다.
이런 동네에 갤러리 원앤제이와 스케이프가 둥지를 틀고 지난 1일 동시에 개관전을 열었다. 심사가 깐깐하기로 소문난 홍콩 아트바젤에 참가할 정도로 파워 있는 두 갤러리가 산동네로 간 배경은 뭘까. 더욱이 주민들이 대부분이 장년층 이상의 고령자이고, 수도·전기수리 등 이른바 ‘노가다’로 생업을 하는 곳이다.
8일 찾은 다산동 성곽길은 600년이 넘는 돌담과 가을 단풍이 어우러져 한껏 아취가 있었다. 그러나 성곽길 아래로는 낡은 집들이 다닥다닥 끝 모르게 이어져 이율배반적인 동네 풍경 같았다.
화랑가 1번지 삼청동에 이어 다산동에 2호점을 낸 원앤제이는 성곽 길 맨 위쪽에 상가를 개조한 1층에 들어섰다. 삼청동의 화랑을 접고 이사 온 스케이프는 500여m 아래에 위치했는데, 산뜻한 흰색의 외관이 젊음을 발산했다.
중구(구청장 최창식)는 장충체육관 입구에서 성곽을 끼고 올라가는 동호로 17길 1000m 일대에 ‘한양도성 다산길 예술·문화 거리 조성 사업’을 벌이고 있다. 지난해부터 구청 예산으로 낡은 주택을 매입해 리모델링하거나 리모델링비를 지원하는 방식으로 문화공간으로 변신시키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 11월 공연시설인 ‘코레아트’와 전시 및 작업 공간인 ‘써드플레이스’가 들어섰다. 올 들어서는 구청예산으로 건물주의 리노베이션 비용을 일부 지원하고, 개조한 공간을 전세낸 뒤 갤러리 등에 저렴하게 임대해주는 ‘문화창작소’ 사업을 벌이고 있다.
스케이프 손경애 대표는 “20평 공간에 임대료가 월 15만원으로 삼청동에 비해 20분 1정도로 싸다”고 환하게 웃었다. 이어 “고정 고객들이 있어 위치와 상관없이 갤러리를 찾을 것으로 기대돼 이 동네에 젊음이 유입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두 갤러리에 앞서 5월에는 유리공예공방 ‘라름’과 도예 전시공간 ‘AA세라믹 스튜디오’가 이사 왔다. 경로당 2층에 자리한 라름은 쇠파이프에 유리 용액을 묻히고 입으로 불어 유리잔을 만드는 데 쓰는 용해로, 서냉로, 가마 등의 시설이 있어 마치 철공소를 연상시킨다. 라름을 운영하는 이재경 작가는 “서울 도심에 이런 시설을 갖추기는 쉽지 않다”고 말했다.
흉물스럽다고 민원이 들어왔던 집 3채를 개조한 써드플레이스는 문화창업 컨설팅을 하는 ‘작은집’, 창작 및 전시·강좌 공간인 ‘페이퍼’, 갤러리 ‘정다방’이 나란히 어깨를 맞대고 있다. 페이퍼의 전사섭 대표는 “주민들이 대부분 갤러리를 구경 한번 해보지 못한 분들이다. 담을 허물어 문턱을 없애니 슬리퍼를 신고 산책하다 들르기도 한다”고 말했다. 칠보공예를 배우거나 사진전을 구경하다 아마추어 사진작가로 나선 주민도 있다.
문제는 이곳 역시 서촌, 연남동처럼 예술가들이 모여 들면서 집값이 오르고 원주민이 밀려가는 젠트리피케이션 부작용이 일어날 것이냐에 있다. 구청의 지원이 없는데도 자생적으로 카페, 갤러리, 공방 등이 슬슬 들어서고 있다. 연초 평당 1000만원하던 땅값은 3000만원으로 뛰었다. 전 대표는 “성곽이 있어 개발 때 문화재청의 심의를 받아야 하는 안전장치가 있는 것은 다행”이라며 “예술인과 원주민이 공존하는 모델로 갈 수 있도록 중구청이 고민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
서울 중구청의 문화실험…한양도성 옆 산동네 낡은 주택 리모델링 통해 산뜻한 문화공간으로 업그레이드
입력 2016-11-10 04: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