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송 : ‘이 세상 험하고’ 263장(통 197)
신앙고백 : 사도신경
본문 : 사무엘상 25장 4∼13절
말씀 : 본문은 격분하는 두 남자의 이야기입니다. 사울의 추적을 피하며 양식을 구하는 일이 다윗에게 결코 쉽지 않았습니다. 마침 그가 주둔한 곳 근처에 큰 부자가 있었습니다. 양 3000마리를 소유한 나발입니다. 나발이 양털을 깎는 잔칫날을 기하여 다윗은 부하(소년) 열 명을 보냈습니다. 그들을 보내며 ‘당신의 종들과 당신의 아들 다윗’이라 하였습니다(8절). 그는 나발에게 최대한 겸손하게 처신했습니다.
다윗은 나발에게 자신이 나발의 목자들(재산)을 지켜줬으며 그들을 해치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일부러 그랬다기보다는 그가 군사와 함께 그곳에 있음으로 인해 자연스럽게 그리 된 것입니다. 다윗은 그에 대한 보상을 요구한 것입니다(7절). 마치 조직폭력배처럼 다윗은 관리비를 받아내려는 것입니다.
다윗이 전하는 말을 듣자마자 나발은 가랑잎에 불붙기처럼 앞뒤 가리지 않고 화를 냈습니다. 아주 심한 말로 모욕하며 그들을 돌려보냈습니다. 다윗이 ‘당신의 소년들’(8절)이라 부른 이들을 도망 친 종들(10절)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리고 사울이 다윗을 부른 것과 똑같은 투로 ‘다윗은 누구며 이새의 아들은 누구냐’며 모욕했습니다(10절).
이에 다윗은 크게 화를 냈습니다. 6절의 우호적인 태도(너는 평강하라 네 집도 평강하라 네 소유의 모든 것도 평강하라)가 어떻게 돌변했는지 13절(다윗이 자기 사람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각기 칼을 차라 하니 각기 칼을 차매 다윗도 자기 칼을 차고 400명 가량은 데리고 올라가고) 말씀에서 보여줍니다. 6절에는 평강이란 말이 세 번, 13절에는 칼이란 낱말이 세 번 쓰였습니다.
다윗은 나발의 집을 쑥대밭으로 만들려했습니다(삼상 25:21∼22). 나발에게만 복수하려는 게 아니라 그 집에 있는 남자를 모두 죽이려했습니다. 물론 다윗을 이해할 수는 있습니다. 자신을 죽이려는 사울을 피해 다니는 동안 얼마나 많은 피로와 분노가 해소되지 못한 채 쌓였을까요. 그 화가 폭발한 것은 아닐까요.
다윗의 이 분노와 보복 시도는 정당합니까. 전혀 이해되지 않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도가 지나칩니다. 비록 정당하더라도 마음에 분을 품고 행하면 부작용이 생기기 마련입니다. 하물며 위와 같은 일을 분노에 따라 처리한다면 그 후유증은 이루 말할 수 없이 클 것입니다. 아찔한 순간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이 분노조절장애를 겪고 있습니다. 화가 날 때 필요 이상으로, 아니 지나치게 반응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이로 인해 우리 사회 곳곳에서 끔찍한 소식들이 들려옵니다. 홧김에 저지른 한순간의 행동이 평생 동안 족쇄가 되곤 합니다. 나발이나 다윗같이 어리석은 혹은 과도한 반응이 우리에게는 없습니까. 흔히 분노를 잘 다스리면 감주가 되고 그것에 끌려가면 독주가 된다고 합니다. 우리는 어떤 모습인지 한 번 생각해봅시다.
기도 : 하나님, 저희에게는 화를 내는 기질이 있습니다. 이것을 성령 하나님께서 다스려 주소서. 화가 날 때에도 신앙을 지키며 지혜롭게 조절하도록 저희를 이끌어 주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주기도문
정현진 목사(서울 수도교회)
정리=노희경 기자
[가정예배 365-11월 10일] 마주 보고 달리는 두 기차
입력 2016-11-09 21: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