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직 목사님이 나를 부르셨다.
“나는 얼마 후에 은퇴를 합니다. 영락교회를 박 목사께서 맡아주세요.” 청천벽력 같은 말씀에 머리를 한 대 세게 얻어맞은 것 같았다. 나는 극구 사양했다. 그리고 용기를 내어 한 목사님께 말씀을 드렸다.
“저는 한 목사님의 사랑을 넘치게 받았고 목사님으로부터 너무나 많은 걸 배웠습니다. 저에게 그런 기대를 가져주시니 감사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그런데 목사님, 송구합니다. 이것만은 제가 받아드리기 어렵습니다. 그렇다고 지금 저를 오라고 하는 교회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제 앞길은 하나님께서 분명히 인도해주실 겁니다. 저는 한 목사님이 시무하시는 동안 온 힘을 다해 목사님을 도와드리겠습니다.”
그때 한 목사님이 건넨 한마디에 나는 와르르 무너졌다.
“그래요. 언제라도 그만둘 수 있다는 생각으로 이 교회를 맡아주세요.” 아, 어쩌란 말인가. 한 목사님의 그 부탁마저 거절할 수는 없을 것 같았다. 아버지 같은 어르신의 간절한 말씀을 거절할 용기가 솟아나지 않았다. 순종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너무나 뜻밖의 요청인데다 힘겨운 결정이라 심적 부담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밥을 먹어도 밥맛이 없었고, 잠을 청해도 잠이 오질 않았다.
바로 그때 즈음 하나님께서 여호수아 1장의 말씀을 들려주셨다. 환상까지 보여주셨다.
이스라엘의 출애굽 영도자 모세의 뒤를 이은 여호수아에 대한 메시지였다. 모세가 세상을 떠난 뒤 젊은 종 여호수아에겐 약속의 땅 가나안을 향해 이스라엘 민족을 이끌고 가야 하는 절체절명의 사명이 맡겨졌다. 여호수아가 감당해야 했던 그 부담감이 고스란히 나에게 전해지는 것 같았다.
그때 하나님은 여호수아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모세에게 말한 바와 같이 너희 발바닥으로 밟는 곳은 모두 내가 너희에게 주었노니 … 내가 모세와 함께 있었던 것 같이 너와 함께 있을 것임이니라 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하며 버리지 아니하리니 강하고 담대하라….”(여호수아 1장 중) ‘내가 너와 함께 있을 것임이라’ ‘강하고 담대하라’. 나는 이 말씀에 대한 굳은 확신을 품고서 영락교회 담임 목회자로서의 첫발을 내디뎠다.
‘영락교회 한경직 목사의 후계자는 누가 될 것인가.’ 한국 교계와 사회가 주목하던 때였다. 그런데 서른 일곱의 시골뜨기 젊은 목사가 한경직 목사님의 후계자가 되다보니 염려하는 여론이 만연했다. “영락교회 시대는 끝났다” “영락교회는 곧 갈라질 것이다”…. 이런 부정적인 여건 속에서 교회를 책임져야 했던 나로서는 크나큰 부담이었다.
어떤 선배목사가 해준 말이 문득 떠올랐다.
“목회를 잘하지 못한 선임 목사의 뒤를 이어서 목회하는 건 별로 어렵지 않다. 그러나 목회를 성공적으로 마친 선임자의 후임으로 일하는 것은 아주 어렵다. 왜냐하면 웬만큼 해서는 잘했다는 표시가 나지 않으니까.” 맞는 말 같았다.
내 경우는 후자였다. 만일 내가 교회를 책임지고 난 뒤에 정말 교회가 갈라지거나 하면 어떻게 되나. 나 자신의 명예보다 하나님의 이름이 어떻게 되겠는가를 생각하니 어깨가 더 무거워졌다. 그래선 안된다. 새 목회자가 부임하고 나서 교회가 더 새로워지고 더 성장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래야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겠는가.정리=박재찬 기자 jeep@kmib.co.kr
[역경의 열매] 박조준 <9> 한경직 목사 “영락교회 맡아달라” 뜻밖의 요청
입력 2016-11-09 21: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