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리한 경기 운영과 완급조절 능력, 상대 수비의 허를 찌르는 노룩(no look) 패스에 슛마저 터지니 더 이상 부족할 게 없다. 올 시즌 서울 삼성으로 이적한 김태술(32)이 말 그대로 ‘물 만난 물고기’와 같은 활약을 보여주고 있다. 지난 수년간 부진했던 모습은 온데간데 없다. 덕분에 삼성은 포인트가드 김태술을 앞세워 ‘가드 왕국’의 명성을 되찾고 있다.
김태술은 연세대 시절부터 대학농구를 주름잡았던 가드다. 2007년 신인 드래프트 전체 1순위로 서울 SK 유니폼을 입었다. 데뷔 첫해 신인왕까지 거머쥐며 프로농구 차세대 스타로 주목받았다. 포인트가드와 슈팅가드를 오가는 ‘듀얼 가드’들이 득세하는 시대가 오자 그의 존재감은 더 빛났다. 안정적인 리딩 능력을 바탕으로 프로농구에서 거의 유일한 정통 포인트가드라는 평가를 받았다.
2008-2009시즌이 끝난 뒤 김태술은 안양 KGC로 이적했다. 당시 트레이드 상대는 현재 삼성에서 한솥밥을 먹고 있는 주희정(39·삼성)이다. 김태술은 2011-2012시즌 양희종 오세근 등과 함께 KGC의 첫 우승을 이끌며 전성기를 구가했다.
그런데 우승 이후 슬럼프가 찾아왔다. 자유계약선수(FA) 자격을 눈앞에 둔 2013-2014시즌 경기당 평균 득점은 한 자릿수 대(8.47점)까지 떨어졌다. 설상가상으로 췌장암과 싸우던 그의 아버지는 2014년 2월 병세 악화로 끝내 세상을 떠났다.
이듬해 FA가 된 김태술은 전주 KCC 유니폼을 입었다. 그리고 최악의 2시즌을 보냈다. 야투율은 30%대로 저조했다. 팀 색깔과도 어울리지 않았다. 코트 위에서 공은 전태풍과 안드레 에밋의 차지였다. 김태술의 입지는 점점 더 줄어들었다. 지난해 KCC는 정규리그 우승을 차지했지만 그는 마냥 웃을 수 없었다.
새 시즌을 앞두고 김태술은 삼성 이상민 감독의 부름을 받았다. 이현민과 트레이드로 가드 왕국에 새 둥지를 틀었다. 삼성은 김태술의 세상이었다. 모든 게 포인트가드인 그를 중심으로 새롭게 개편됐다. 현역시절 최고의 포인트가드로 불렸던 이 감독이 김태술의 농구 스타일을 모를 리가 없었다.
마음 편히 농구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됐다. 그의 곁엔 백전노장 주희정, 우승 DNA로 무장한 리카르도 라틀리프와 문태영이 있다. 어느덧 3년차를 맞은 빅맨 김준일도 있다. 이젠 동료들의 입맛에 맞게 밥상만 차려주면 된다.
김태술은 빠른 공격 전개로 팀 스피드를 한층 끌어올렸다. 동료들이 쉽게 득점하도록 구석구석 송곳같은 패스를 찔러댔다. 경기당 평균 10.3점 5.9도움. 득점과 패스 능력 모두 전성기 수준을 회복했다. 자신감도 완전히 되찾았다. 김태술은 “동료들이 많이 도와주고 있어 마음 편하게 경기하는게 도움이 된다”며 “예전 KGC 시절의 플레이와 느낌이 하나 둘씩 몸 속에서 깨어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삼성은 김태술의 가세로 단숨에 강팀이 됐다. 삼성은 8일 전주실내체육관에서 열린 KCC와의 경기에서 86대 72로 완승을 거뒀다. 4연승을 달린 삼성(6승1패)은 고양 오리온(5승1패)을 따돌리고 단독 선두에 올라섰다. KCC(1승6패)는 4연패 굴욕과 함께 단독 최하위로 내려갔다.
박구인 기자 captain@kmib.co.kr
‘물 만난 물고기’ 김태술 가드왕국 재건 지휘
입력 2016-11-09 04: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