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가을에 조동진(69·사진)의 앨범이 도착했다. 전설이 되어버린 줄로만 알았던 조동진이 20년 만에 새 앨범을 들고 온 것이다. 그는 “기타를 집어 넣는데 10년, 다시 꺼내는 데 10년 걸린 셈”이라고 그간의 공백을 설명하고 만다.
‘나무가 되어’란 제목의 새 앨범은 조동진 6집이 된다. 노래를 들어보면 조동진의 읊조리는 듯한 목소리는 확실히 쇠잔해진 느낌이다. 그러나 서정적인 멜로디, 섬세한 가사, 관조하는 태도 등 조동진 음악의 특징들은 변함없이 뚜렷하다. 사운드는 보다 정교하고 풍부해졌다.
첫 곡 ‘그렇게 10년’은 ‘어느 바람 찬 봄날 갑자기/ 숨차게 부르던 노래 소리 그치고/ 어느 낯설은 길목 지나서/ 말없이 그렇게 십년을 다시 흘려 보냈다’라며 그간의 세월을 보고하는 듯하다. ‘1970’이나 ‘천사’ 같은 곡들에서도 진솔한 고백을 들려준다. ‘나무가 되어’ ‘섬안의 섬’ ‘하얀 벽’ 등은 조동진 음악의 서정성을 온전히 재현하는 곡들이다.
조동진은 한 명의 가수라기보다는 하나의 장르였다. 그는 1990년대의 전설적인 레이블인 하나음악을 이끈 수장이었다. 조동진과 그의 동생 조동익이 주도했던 하나음악은 포크 가수들의 음악공동체였고, 한동준 김광민 조규찬 장필순 유희열(토이) 김창기(동물원) 등 한국 대중음악사의 명반들을 제작했다. ‘조동진 사단’은 상업성이나 유행에서 초연한 채 싱어송라이터로서의 정체성을 깊고 느리게 추구했고, 그런 그들의 음악은 포크라는 말로 규정하기 어려운 독특한 개성과 분위기를 형성했다.
1979년 ‘울고 있나요 당신은 울고 있나요’로 시작되는 노래 ‘행복한 사람’이 수록된 1집 앨범을 통해 음악 활동을 시작한 조동진은 1996년까지 다섯 장의 앨범을 발표했다. 대중들에게 많이 알려진 ‘나뭇잎 사이로’와 ‘제비꽃’은 각각 2집(1980년), 3집(1985년) 수록곡이다.
1990년대가 끝나면서 조동진과 하나음악은 서서히 잊혀져 갔고 그렇게 사라지는 듯 했다. 그러나 2010년대 들어 하나음악은 푸른곰팡이라는 이름으로 살아났다. 윤영배 조동희 등의 새 앨범을 제작하면서 기지개를 켰다. 조동진의 새 앨범에도 과거 하나음악 가수들이 대거 참여했다. 조동익이 사운드와 편곡을 맡았고, 장필순 박용준 오소영 신석철 최성규 등이 연주에 참여했다.
돌아온 조동진은 여전히 말이 없다. 우리는 그의 노래만 들을 수 있을 뿐이다. 이 속도전의 세상에서 한사코 비켜서 조용히 삶을 관조해온 거장의 새 음반을 듣는다는 것은 늦가을을 즐기는 꽤 괜찮은 방법이 될 것 같다.
김남중 기자 njkim@kmib.co.kr
조동진 ‘전설’이 돌아왔다
입력 2016-11-10 04: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