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형사·사법처리절차에서 사회적 약자들이 자기방어권을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 대표적 사례가 ‘나라슈퍼 3인조 강도치사’ 사건이다. 17년 만에 누명을 벗은 3명은 지적장애인이거나 말과 행동이 어눌했다. 이들은 경찰, 검찰, 법원 어디에서도 ‘자기방어권’을 누리지 못했다.
‘나라슈퍼 3인조’ 사건은 1999년 전북 완주군 삼례읍 나라슈퍼에 강도 3명이 침입해 잠을 자던 유모(77)씨를 살해하고 금품을 훔쳐 달아난 사건이다. 경찰은 당시 범인으로 임명선(37) 최대열(37) 강인구(36)씨를 지목했다. 최씨와 강씨는 지적장애인이었고 강씨 또한 말과 행동이 어눌한 편이었다. 검찰과 경찰은 ‘진범이 있다’는 제보를 무시했다.
이들은 각각 3∼6년간 실형을 선고받고 복역했다. 출소한 뒤 “경찰의 강압수사로 허위자백을 했다”고 주장하면서 뒤늦게 부실·강압수사 논란이 불거졌다. 지난해 3월 법원에 재심을 청구했다.
사건을 맡은 전주지법 형사1부(부장판사 장찬)는 지난달 28일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17년간 크나큰 정신적·육체적 고통을 겪은 피고인들과 가족 여러분께 깊은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고 사과했다. 이어 “설령 피고인들이 자백을 했더라도 정신지체로 자기방어력이 부족한 사회적 약자들이라는 점을 면밀히 살피지 못했다”고 반성했다.
이 일을 계기로 국가인권위원회는 사회적 약자의 형사·사법절차상 방어권 보장실태 조사에 들어갔다. 인권위는 조사결과 미성년자·장애인 범죄 피의자의 자기방어권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다고 8일 밝혔다. 인권위는 국선변호사 제도 확대, 신뢰관계자 동석제도 의무화 등을 도입하라고 지적했다.
미성년자나 장애인은 의사소통·표현에 어려움이 있어 구체적 범죄 정황, 자신이 취한 태도의 이유 등을 수사기관과 법원에 충분히 이해시키지 못할 위험이 크다. 이 때문에 변호인이나 신뢰관계인 등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미성년자·장애인 범죄 피의자의 자기방어권을 보호하기 위한 법적 제도는 부실하다. 미성년자의 경우 ‘아동학대범죄의 처벌에 관한 특례법’ ‘아동·청소년 성보호에 관한 법률’ 등 범죄 피해자 위주다. 장애인 관련법도 ‘장애인 복지법’ ‘장애인차별금지법’ 등 장애인 지원과 관련된 행정법제가 주를 이루고 있다.
현행법상 수사단계의 ‘피의자’ 신분일 경우 국선변호사를 선임토록 하는 제도가 없다. 공판단계로 넘어가 ‘피고인’ 신분이 됐을 때에야 형사소송법에 따라 국선변호사를 선임할 수 있다. 사선변호사를 선임해도 피의자 신문에서 변호인이 할 수 있는 역할은 제한적이다. 경찰청에 따르면 2010∼2014년 경찰 수사단계에서 피의자를 신문할 때 변호인이 참여한 비율은 매년 전체 형사사건의 0.3%를 넘지 않는다. 변호사들은 “신문 과정에서 변호인 참여권이 극히 적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인권위는 미성년자·장애인의 피의자 신문에 한해 국선변호사 제도를 확대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봤다. 수사에 심각한 지장을 주지 않는 선에서 변호인 참여권도 적극 보장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여기에다 신뢰관계자 동석이 의무조항이 아닌 탓에 부작용도 적지 않다. 인권위가 국선 전담 변호사, 수화통역인, 소년사건 보조인, 경찰수사관 등 22명을 대상으로 심층조사를 한 결과 수사 현장에서 미성년자·장애인 인권이 침해당한 사례가 다수 발견됐다. 장애인이라는 점을 고려하지 않고 수사를 한다거나 신뢰관계자 동석 요청이 묵살된 경우도 있었다. 미성년자에게 보호자가 없거나, 미성년 피의자가 보호자 없이 조사를 받고 싶다고 요청해 보호자가 없는 상태에서 조사를 진행하기도 했다.
피의자들이 심리적으로 위축돼 피의자신문조서 열람도 제대로 하지 않기도 한다. 의사소통이 불가능한 피의자가 장문의 답변을 한 것처럼 조서가 작성된 사례도 보고됐다. 인권위 관계자는 “현행범 체포 시 ‘진술거부권’ 고지 의무화, 청각장애인의 통역을 돕는 수화통역인의 자질 검증 등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글=이가현 기자 hyun@kmib.co.kr, 그래픽=이석희 기자
[단독] 사회적 약자 ‘자기 방어권’ 여전히 취약하다
입력 2016-11-08 18: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