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 걸레·죄인 돼버렸다” 울고싶은 ‘최순실 회사’ 직원들

입력 2016-11-08 18:28 수정 2016-11-08 21:24

지난 9월 29일 미르재단 노동조합은 몇몇 기자들에게 이메일로 성명서를 보냈다. 노조는 “직원들은 재단의 목적에 자긍심을 갖고 사업에 임했다. 재단 직원들을 정치권과 연관짓는 건 인격모독”이라고 강하게 항의했다. 미르재단 직원들은 각종 의혹이 불거지던 9월 초 노동조합을 결성했다. 노조 관계자들은 8일 “언론을 통해 최순실과 차은택 이름을 처음 접했다. 그 전까지는 존재도 모르는 사람이었다”고 강조했다.

‘최순실 컴퍼니’(최씨가 주도했거나 소유·개입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회사들)의 직원들이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언론보도를 통해 자신이 다니는 회사가 최순실(60·구속)씨와 연관된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고 난감한 상황에 빠졌다.

최씨의 최측근인 차은택(47) 전 창조경제추진단장이 사실상 설립을 주도한 것으로 알려진 미르재단의 전직 직원은 “직원들이 이미 ‘국민의 걸레’가 돼 버렸다. 미르재단에 다닌다고 죄인 취급을 받아 아무 일도 할 수 없는 상황”이라며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그는 “직원들은 비선실세니 최순실이니 하는 말을 들어본 적도 없다”고 했다.

정부가 중점적으로 추진하는 사업에 최씨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했다는 정황들이 드러나면서 해당 업무를 담당하는 직원들의 실망감도 크다. 2014년 12월 한국콘텐츠진흥원장에 취임한 송성각(58)씨는 차 전 단장의 ‘대부’로 알려졌다. 송씨가 원장에 취임한 뒤 콘텐츠진흥원은 문화체육관광부로부터 문화창조융합벨트사업 관련 예산으로 900억원 이상을 지원받았는데 특혜라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직원들 사이에서는 ‘창조경제’나 ‘문화융성’ 같은 모호한 단어로 포장된 사업들이 결국엔 최씨와 그 측근들의 이익을 위한 것이 아니었느냐는 자조 섞인 목소리도 나온다.

최씨 일가와 친분이 있던 스포츠 스타나 연예인들도 곤욕을 치르고 있다. 최씨의 조카 장시호(37·장유연에서 개명)씨가 설립을 주도한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에서 전무이사를 맡았던 빙상 국가대표 출신 이규혁(39)씨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장씨를 모른다”고 말했다가 “친분 관계는 있지만 (특혜 의혹은) 억울하다”고 말을 바꾸기도 했다. 장씨와 친분이 있는 것으로 알려진 연예인들은 각종 특혜 시비에 대해 ‘사실무근’이라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반면 ‘최순실 컴퍼니’와 인연을 맺을 뻔했던 이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과거 최씨와 6개월 정도 유아스포츠 사업을 했던 B씨는 “그때 하던 일이 잘 풀렸으면 지금쯤 검찰청사 포토라인에 섰을지도 모른다”며 “일이 잘 안 풀린 게 돌이켜보면 잘된 일”이라고 말했다.

글=김판 기자 pan@kmib.co.kr, 삽화=이은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