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순실, 개인 사무실서 ‘靑 제2 결재라인’ 행세

입력 2016-11-08 18:27
최순실(60·구속)씨가 자기 사무실에 앉아 ‘청와대 심처(深處)’의 논의 상황을 보고받고 조종한 정황이 검찰 수사를 통해 드러나고 있다. 청와대 바깥 ‘별궁’에 제2의 결재라인이 존재했던 셈이다.

검찰 특별수사본부는 최씨의 태블릿PC에 담겼던 청와대 보고 문건 40여개를 대상으로 디지털 증거분석 작업을 벌여 한두 건을 제외하고 모두 미완성본이거나 공식 문서로 등록되기 이전 상태임을 확인했다. 최씨에게 넘어간 문건들에는 ‘통일대박론’ 실천 방안이 담긴 독일 드레스덴 연설문 등 박 대통령의 국내외 연설문, 국무회의 자료, 외교부 문건, 대통령직인수위 시절 자료 등이 망라됐다.

검찰은 이 문건들이 공식 결재라인이나 비공식 업무협조 형태로 부속실에 넘어온 뒤 정호성(47·구속) 전 부속비서관을 통해 최씨 수중에 들어간 것으로 본다. 파일의 경우 정 전 비서관이 이메일을 통해 발송한 것으로 파악됐다. 검찰은 그가 직접 서류 뭉치를 들고 최씨를 찾아가 보고했다는 증언도 확보했다. 정 전 비서관은 검찰 조사에서 “대통령이 연설문 초안 등을 여러 사람이 검토하는 게 좋겠다면서 최씨에게도 전달하라고 해서 줬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이 압수한 정 전 비서관의 차명 휴대전화 음성 녹음파일에는 최씨가 문서 송부를 요구한 정황도 나오는 것으로 알려졌다. 두 사람이 박 대통령 주재 수석비서관회의 관련 내용을 논의하는 대화도 녹음돼 있다. 정 전 비서관은 ‘지시 내용을 정확히 이행하기 위해서’ 박 대통령과의 통화도 녹음했었다. 박 대통령과 최씨를 사실상 ‘동급’으로 보좌했다는 얘기로도 풀이된다.

박 대통령은 지난달 25일 대국민 담화에서 “취임 후에도 일정 기간에는 일부 자료에 대해 최씨의 의견을 들었다”고 밝혔었다. 향후 박 대통령 조사 때도 미르·K스포츠재단 설립 경위와 함께 최씨가 결재권자처럼 행세한 대목이 중점적으로 다뤄질 것으로 보인다.

검찰은 최씨가 받아본 문서들이 공식 문서번호가 달린 최종본이 아니라는 점을 감안해 정 전 비서관에게 대통령기록물관리법 위반 혐의가 아닌 공무상비밀누설 혐의를 적용해 지난 6일 구속했다. 검찰 관계자는 “태블릿PC 속 200여개 파일 중 문건 형태는 40∼50건”이라며 “공식 등록된 최종본이 아니라 현재로서는 대통령기록물법 적용이 어렵다”고 말했다. 민간인 신분인 최씨의 경우 청와대 보고 문서를 수령하는 쪽이라 공무상비밀누설 혐의로도 처벌이 쉽지 않아 검찰은 다른 적용 법조를 고심 중이다.

지호일 기자 blue5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