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최근 부천시기독교총연합회 소속 목회자 등 70여명과 함께 동서유럽의 교회를 방문하고, 예배와 기도회를 인도했다.
독일 비텐베르크는 마르틴 루터가 첫 종교개혁의 신호탄을 올린 곳으로 유명하다. 1517년 10월 31일 로마 가톨릭의 사제였던 루터는 비텐베르크 성(城)교회 정문에 95개조 반박문을 붙이며 종교개혁의 불을 지폈다. ‘오직 성경’ ‘오직 예수’ ‘오직 은혜’ ‘오직 믿음’ ‘오직 주께만 영광’ 등이 5대 캐치프레이즈였다. 죄와 구원 문제로 고민하면서 가톨릭의 미사와 고해 성사에 의구심을 가져왔던 루터는 이 반박문에서 죄는 그리스도의 은혜 아래 내적인 회개로 사함을 받을 수 있고 교황에게는 면죄권이 없으므로 면죄부는 무용하다고 주장했다. 극단적이고 파격적이었던 이 논제들은 독일을 포함해 온 유럽사회를 뒤흔들었다. 신대륙의 발견과 산업 발달로 육체가 근대화됐다면 프로테스탄트의 탄생으로 영혼이 비로소 탈바꿈하게 된 것이다.
보름스는 1521년 루터의 청문회가 소집된 곳이다. 종교 재판과 이단 심문이 횡행하던 그 시대에 가톨릭의 옹호자 신성로마제국 황제 앞에 선다는 것은 목숨을 걸어야 하는 일이었다. 이 겁 없는 수도사는 자신을 심문하는 자리에서 개혁입장 철회를 거부하며 너무나도 유명한 진술을 남겼다. “여기 나는 확고부동하게 서 있습니다. 나는 달리 어찌할 도리가 없습니다. 내 양심은 하나님의 말씀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나는 아무것도 취소할 수 없고 또 취소하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이여, 이 몸을 도우소서. 아멘.”
루터는 자신의 신념과 공언을 번복하지 않았다. 비뚤어진 세상의 구조를 바로잡는 데 있어 전대미문의 탁월성과 대범함을 보인 하나님의 일꾼이었다. 철저한 금욕주의, 영성, 모범적인 기도생활 등은 그가 ‘영광의 신학’보다 ‘십자가의 신학’을 추구했음을 보여준다.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고 중단 없이 단호하게 종교개혁을 이끈 루터의 영성은 오늘날 수많은 사람들의 신앙에 지대한 도전을 준다.
루터의 종교개혁에 뿌리를 둔 개신교회는 현재 유럽과 미국 등에서 서서히 쇠락하고 있다. 다행인 것은 서유럽 교회에 비해 동유럽 교회들은 아직 영성이 꺼지지 않은 듯하다. 독일 폴란드 크로아티아의 교회를 참관하고 성회를 인도하는 가운데 평신도들의 자발적인 간증을 들을 수 있었다. 그들의 예배와 찬양의 열정을 보면서 유럽교회의 희망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프랑크푸르트교회 성도들은 한국 목회자들에게 “강한 영성을 원한다”고 말해 안수기도를 해주기도 했다. 특히 폴란드교회에 젊은이들이 많이 모이는 것을 보며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다.
일부 신학자들은 그동안 놀라운 성장을 보인 한국과 남미의 교회에서 희망을 본다고 평가한다. 과연 그럴까. 최근 한국교회는 세속의 물결이 교회 안까지 들어와 500여년 전 타락의 길을 걸었던 가톨릭교회와 크게 다르지 않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빛의 사명은 잘 감당했는지 몰라도 소금의 사명을 제대로 감당하지 못해 1990년대 이후 최대 위기를 맞고 있다.
종교개혁500주년을 앞두고 자성과 변화의 몸부림이 강하게 일어나야 할 때다. 특히 대통령과 참모들이 연루된 작금의 국정농단은 국민들에게 절망의 바이러스를 뿌리고 있고 이는 독버섯처럼 번지고 있다. 종교개혁의 원인 제공자인 교황과 교황청의 극단과 다를 바 없다. ‘출구가 없다. 끝장이다’는 용어들이 난무하고 있다.
한국교회는 루터처럼 ‘갱신할 수 있다, 된다, 가능하다’는 개혁신앙과 희망의 깃발이 돼야 한다. ‘교회가 가는 곳에 국가가 간다’라는 말이 있듯 상처받은 국민들에게 교회는 희망이 돼야 한다. 그래서 교회도 세우고 나라도 세워야 한다. 오늘 교회부터, 나부터 먼저 ‘내 탓입니다’를 고백하며 변화의 선봉에 섰으면 한다.
김경문 목사 (국민일보목회자포럼 회장, 순복음중동교회)
[특별기고] 상처받은 국민들에게 교회가 희망돼야
입력 2016-11-08 20: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