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들이 설비투자를 확 줄이면서 가계보다 법인의 은행예금이 더 많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가계는 저축을 통해 자금을 대고 기업은 이를 투자해 이윤을 낸다는 경제학 기본 공식이 무너진 것이다. 법인예금이 가계예금보다 많아진 탓에 은행들의 영업 전략에도 변화가 필요하다는 주문이다.
KDB산업은행 조사부는 8일 ‘자금조달원으로서 법인예금 중요성 부각’ 보고서를 통해 2016년 6월 말 예금은행의 법인예금 잔액이 626조7000억원을 기록해 가계예금 571조5000억원을 앞질렀다고 밝혔다. 비중으로 따지면 기업이 포함된 법인예금이 52.3%였고, 가계예금은 47.7%에 그쳤다.
2005년엔 이렇지 않았다. 당시 연말 가계예금 잔액은 318조원으로 56.6%의 비중을 기록, 법인예금 244조원(43.4%)을 압도했다. 10년 새 가계와 법인의 예금잔액 비중이 뒤바뀐 것이다.
한국은행 자료를 바탕으로 1991년부터 예금은행 주체별 예금잔액 장기 추세를 살펴보니 법인예금은 특히 1998∼2000년 외환위기 당시와 2008∼2010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 큰 폭으로 증가했다. 산은 신정근 팀장은 “위기 때 투자를 미루고 상대적으로 안전한 은행 계좌에 예금을 넣어두는 경향을 보였다”고 말했다.
보고서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기업들의 투자가 줄어들면서 기업의 자금 부족 규모가 큰 폭으로 감소했다”며 “반면 가계는 최근 가계부채 확대로 자금잉여 규모가 축소되는 모습”이라고 밝혔다. 결론으로 “자금 부족 주체로서 기업과 자금잉여 주체로서의 가계라는 프레임이 약화되는 추세”라고 진단했다.
법인예금 확대는 결국 은행 영업 방식의 변화를 촉발하게 된다. 예대마진을 기반으로 한 전통적 방식에서 자산운용 능력이 강조되는 투자금융으로 변해야 한다는 의미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단순하게 가계자금을 가져다 기업대출을 통해 이익을 남기는 모델이 아니라 투자상품으로 수익을 내고 사업성을 평가해 돈을 빌려주는 기업투자금융(CIB) 전략이 강조되고 있다”고 말했다.
우성규 기자 mainport@kmib.co.kr
투자 부진에… 법인 예금 > 가계 예금
입력 2016-11-08 18: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