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 20만명이 서울 광화문광장에 모여 한목소리로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했다. 국가 최고의 통치권으로 사익을 취한 정권에 대한 분노에는 보수와 진보가 따로 없다. 이제 정국은 최순실 게이트에서 박근혜 게이트로 넘어갔다. 우리는 새로운 질문을 던져야 한다. 박근혜 게이트의 본질은 무엇인가? 이에 영화 ‘자백’이 중요한 실마리를 보여준다.
‘자백’은 국가정보원의 간첩 조작 사건을 다룬 다큐멘터리다. 인터넷언론사의 최승호 PD가 2013년 4월 서울시공무원 간첩 조작 사건의 기사를 보고 이후 40개월간 국정원의 간첩 조작 사건을 밀착 취재하고 기록했다. 영화 속 인물을 중심으로 간첩 조작 사건을 찬찬히 살펴보자.
영화에는 국정원에 의해 간첩으로 추정된 3명의 인물이 등장한다. 유우성은 화교 출신으로 2004년 탈북했다. 2011년 서울시 계약직공무원으로 채용된 뒤 국내 탈북자 200여명의 정보를 북한에 넘겨준 혐의로 기소됐다. 유일한 증거는 여동생 유가려의 자백이었다. 2013년 1심에서 법원은 무죄 판결을 내렸다. 검찰은 항소심에서 중국 공안의 출입국 문서를 제시했으나 위조임이 판명되었고 법원은 2심에 이어 3심에서도 무죄로 판결했다.
2014년 국정원은 홍강철이 중앙합동심문센터에서 조사를 받던 끝에 북한 보위사령부 지령을 받고 들어온 간첩이라고 자백했다고 발표했다. 서울시공무원 간첩 조작 사건으로 당시 남재준 국정원장이 사과를 했던 바로 그날이다. 당시 여러 언론은 ‘증거조작 사건에도 불구하고 탈북자 간첩은 있고 국정원은 필요하다’고 대서특필했다. 그러나 홍강철 역시 1심과 2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다.
세 번째 인물은 2011년 12월 중앙합동심문센터에서 조사받던 중 간첩임을 자백하고 자살한 한종수다. 3년이 지난 2014년 취재팀이 확인한 그의 본명은 한준식, 생년월일도 경찰의 기록과 다르다. 그의 죽음에 관해 국정원, 경찰,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 각기 다른 이야기를 한다. 그의 시신은 경기도 시흥시 한 공설묘지 내 무연고 변사자들 사이에 매장되어 있다. 경찰도 한종수의 죽음을 수사하지 못했다. 국정원은 이 사건에 대해 확인해줄 수 없다고 했다.
간첩 조작 사건은 1997년 사라졌다가 2011년 다시 시작되었다. 위의 세 인물은 모두 탈북자이고 중앙합동심문센터에서 간첩임을 자백한 것이 유일한 증거였다. 간첩 조작 사건이 밝혀진 이후 박근혜 대통령과 남재준 국정원장의 사과에도 바뀌는 것은 없었다. 허위 자백을 강제한 국정원 직원과 문서를 위조한 검찰은 솜방망이 처벌을 받았다. 검찰은 홍강철 사건을 다시 항소했고, 영화가 끝난 지금도 재판 중이다.
그렇다면 왜 지금도 간첩 조작 사건이 계속될까. 최 PD가 인터뷰에서 설명한 바에 따르면 이명박정권 시절 원세훈 국정원장 재임 시 모든 탈북자는 중앙합동심문센터에서 6개월간 독방에서 심문할 수 있는 제도를 만들었다. 또한 간첩을 잡은 국정원 직원에게는 격려금과 포상이 주어진다는 것이다. 물론 개인이 아니라 단체일 경우 더 크다고 한다.
영화 후반에 1974년 재일교포 유학생 간첩단 사건으로 잡혀가 7년의 수감생활 끝에 정신질환으로 지금까지 고통받는 김승효의 인터뷰가 잊혀지질 않는다. “그것이 박정희의 정치야. 어떤 정치냐 하면 청와대 정치고 중정의 정치야. 어떤 것이라도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수단을 가리지 않는 것이야.” 오늘날 박근혜 게이트의 시작점은 생각보다 훨씬 더 과거에 있다.
김윤경(계원예술대 교수·광고브랜드디자인과)
[청사초롱-김윤경] ‘청와대 정치’의 위험
입력 2016-11-08 19: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