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8일 오전 정세균 국회의장을 만나 국회가 추천하는 국무총리를 수용하고 야당이 반대하는 김병준 총리 내정자에 대한 지명을 철회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박 대통령은 국회를 전격 방문해 “국회가 총리를 추천해준다면 총리로 임명해 내각을 통할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야당의 김 내정자 지명 철회 요구를 받아들이고 국회가 추천하는 총리에게 권한을 주겠다는 것이어서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으로 촉발된 국가적 위기 사태를 해결할 수 있는 최소한의 단초가 마련된 것이다. 박 대통령이 여야 정치권과 일절 상의 없이 ‘김병준 총리 카드’를 꺼낸 지 6일 만이다.
하지만 분노한 민심을 어루만지기에는 미흡하다. 당장 대통령의 진의를 의심하는 여론이 작지 않다. 국회가 추천하는 총리에게 대통령이 내각을 총괄할 실질적 권한을 줄 것인지가 명확지 않다. 국민 눈에 이번에도 꼼수로 비친다면 대통령의 수습책은 실현되기도 전에 역효과를 낼 수밖에 없다. 이후 대통령은 최악의 상황으로 내몰릴 수 있다.
그러지 않기 위해선 박 대통령이 진정성을 입증할 수 있는 후속 조치를 내놓아야 한다. ‘최순실 사태’로 국민적 신뢰와 권위를 상실한 만큼 더 이상 어떠한 권한도 행사하려 들지 말라는 게 다수 국민의 생각이다. 따라서 이번 제안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선 대통령이 여당의 당적을 정리하는 게 바람직하다. 이미 새누리당의 전직 당대표도 요구했듯 박 대통령이 탈당을 하고 거국중립내각이 구성돼야 한다. 여야 합의로 추천될 책임총리가 전권을 갖기 위해서도 필요한 조치다.
아울러 박 대통령은 국민들 앞에 다시 나와 새 총리에게 조각권과 국정 전반을 맡기고 자신은 국정의 2선으로 물러나겠다고 공언해야 한다. 총리가 책임과 권한을 갖고 내각을 이끌려면 비록 선언적이라고 해도 반드시 있어야 한다. 현행 헌법이 바뀌지 않는 한 대통령중심제에서는 대통령이 받아들이지 않으면 총리가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지금 시간은 대통령 편이 아니다. 박 대통령은 권한을 내려놓기 위한 다음 조치를 서둘러 발표해야 한다. 그래야만 대한민국 국민이 더 이상 상처받지 않을 수 있다.
[사설] 대통령, 탈당하고 국정 2선 후퇴 선언하라
입력 2016-11-08 19: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