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김세원] 민초의 저력

입력 2016-11-08 19:15

우리나라 사람들은 오래전부터 벼랑 끝에 서면 절박한 심정으로 똘똘 뭉쳐 시련을 이겨냈다. 좌초 위기에 처한 나라를 구하겠다고 시민들이 에너지를 모은 촛불집회를 인터넷 생중계로 보면서 우리 사회의 희망을 보았다.

특정단체의 이기심이 부른 집회가 아닌 다양한 계층의 시민이 자발적으로 참여한 집회는 음악공연을 곁들인 축제 같은 집회였다. 강한 분노를 오히려 차분하고 평화롭게 표출시키는 모습이 놀라웠고, 흥을 즐길 줄 아는 민족답게 그동안 억눌렸던 흥을 평화적 시위로 풀어내는 듯했다.

시련 속에서 발견된 이런 모습이 우리의 DNA에 흐르는 저력인 것 같다. 시민 스스로 평화시위를 훼손시키지 않기 위하여 서로 다독이며 질서유지에 힘쓰는 모습도 새로웠다.

우리 민족은 풍광을 즐기며 여유를 부릴 만한 관광지에서도 빨리빨리 가자며 속도경쟁을 하는 사람들인데, 정치권을 바라보며 불같은 급한 마음을 누르고 인내하며 기다리고 또 기다리다 더는 두고 볼 수 없어 터진 것 아닌가.

‘핸들 이빠이 꺾어.’ 한번에 3개 국어를 하는 위대한 국민이라는 자조 섞인 농과 달리 실제로 우리 국민의 위대성은 이미 여러 곳에서 드러났다.

음악·체육으로, 세계 최고 IT강국으로 1등 먹어오는 국민. 세계 최초의 비행기를 만든 창의적 유전자를 이어받아 세계 초일류 제품을 생산해내는 자긍심을 가질 만한 민족이다.

그러나 ‘헬조선·흙수저’라는 단어는 우리 사회를 상당히 어둡고 부정적으로 비추어 민족의 기질과 저력을 누르고 기죽게 하며 우울하게 만들었다.

악바리 근성을 가진 독종인 듯 보여도 눈물도, 정도 많고 성실·근면과 인내심은 세계 어느 민족과도 견줄 수 없는 최고봉인지라, 잘 짜인 시스템을 갖춘 정부에 백성의 견인차가 되어 줄 몇 명의 헌신된 지도자만 있어도 하부를 든든히 받치는 백성의 저력으로 나라가 부흥할 것이다. 백성을 넘어설 만한 지도자가 없는 정치권만 유독 초등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니 붕괴 위험에 처한 나라를 구할 힘은 결국 민초의 저력에서 오는 것인가.

글=김세원(에세이스트), 삽화=전진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