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소’ 마음으로 보는 세상… 이동우가 만난 기적 [리뷰]

입력 2016-11-09 07:03 수정 2016-11-09 09:16
함께 제주도 여행을 떠난 개그맨 이동우(왼쪽)와 임재신씨가 외출 준비를 마치고 숙소 앞에서 두런두런 대화 나누는 영화속 장면. 흥이 오른 이동우는 흐르는 음악에 맞춰 노래를 흥얼거리며 피아노건반 치는 시늉을 했다. 대명문화공장 제공
지난달 31일 열린 언론시사회에 함께 참석한 이동우(왼쪽)와 임재신씨. 대명문화공장 제공
‘나무들이 어떤 모습으로 서있어?’ ‘막 불규칙하게 뒤엉켜있어. 공생(共生)을 하기 위한 몸부림인 것 같아.’

두 남자의 대화소리가 들린다. 화면에는 나무로 빼곡한 숲의 전경이 펼쳐진다. 나뭇가지들은 바람에 나부끼고 있다. 서로가 서로에 기대어 흔들림을 견뎌내는 모습이 두 남자를 닮았다. 영화 ‘시소(see-saw)’는 이렇게 문을 연다.

2010년 망막색소변성증으로 시력을 잃은 개그맨 이동우(본명 김동우·46)와 그의 친구 임재신(44)씨가 이 영화의 주인공이다. 근육병의 일종인 진행성 근이양증을 앓고 있는 임씨는 온몸이 마비돼 혼자 거동할 수 없다. 5%와 95%. 부족함을 안고 사는 두 사람이 함께 제주도 여행을 떠났다. 그 열흘간의 기록을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담아냈다.

‘시소’라는 제목은 이동우가 직접 지었다. 현재를 보는(see) 임씨와 한때 볼 수 있었던(saw) 이동우가 그리는 이야기라는 뜻에서다. 둘의 관계를 비유적으로 표현한 말이기도 하다. 이동우는 “혼자서 즐길 수 없는 놀이기구 시소처럼 ‘둘이 함께하지 않으면 볼 수 없는 세상’에 대한 이야기”라고 설명했다.

두 사람의 인연은 6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동우 가족이 출연한 MBC 휴먼다큐멘터리 ‘사랑’(2010)을 본 임씨가 먼저 이동우 측에 연락을 취했다. 매니저를 통해 그가 전한 얘기는 놀라웠다. 안구 기증 의사를 밝힌 것이다.

“라디오 생방송을 하러 가는 길이었는데 매니저가 차 안에서 울고 있더라고요. 왜 그러냐고 물으니 ‘어떤 사람이 형에게 자기 눈을 주겠다’고 했다는 거예요. 한참을 숨도 못 쉴 정도로 울었습니다.”

“처음에는 당연히 믿기지 않았다”는 이동우는 “누가 장난을 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사실이었다. 그 분이 누군지 궁금했고 만나보고 싶었다. 그렇게 친구가 되어 좋은 우정을 이어가고 있다”고 전했다.

‘나한테 눈 준다고 한 거, 왜 그런 거였어?’ 제주도 여행 중 이동우는 어렵사리 이 질문을 건넸다. “뭘 왜 그래∼” 임씨는 태연하게 입을 뗐다. “형이 지우(이동우의 딸)랑 다큐 찍은 걸 봤어. 지우가 그림을 그려 보여주고 싶어 하는데 형이 보지 못하니까 손을 잡고 하나하나 설명해주더라. 그 모습이 내 딸과 겹쳐져 보였나봐.”

‘그럼 넌 남는 게 없잖아?’ 이동우가 재차 물어도 임씨는 담담했다. “어쨌든 난 하나씩 잃어가고 있잖아. (눈이) 내게 남은 유일한 것이라 생각하지 않았어. 형에게 줄 수 있을 정도로 온전하다는 게 중요했지.”

임씨에게도 딸이 한 명 있다. 평범한 가정을 이루고 살다 1997년쯤 정상적인 보행이 어려워졌다. 아내는 딸이 세 살 됐을 때 떠났다. 어엿하게 자란 딸이 홀로 아빠를 돌보고 있다. 임씨는 “딱 하나 바라는 게 있다면 예쁜 딸의 볼을 쓰다듬어 주는 것”이라고 했다.

‘내게 남은 5%를 이동우가 가진 95%와 합치면 100%가 되겠죠.’ 임씨의 이 숭고한 꿈은 안타깝게도 실현될 수 없다. 망막색소변성증의 경우, 의학적으로 망막 이식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만약 가능하다 해도 (임씨의 눈을) 받을 수 없다”는 게 이동우의 말이다. 그는 임씨를 통해 “마음으로 세상을 보는 눈을 얻었다”는 것에 만족해했다.

이들의 여행은 특별했다. ‘우로 5도.’ ‘조금만 더.’ ‘좌로 10도.’ ‘그렇지.’ 임씨가 길잡이가 되면 이동우는 그의 말소리를 되뇌며 휠체어를 민다. 둘은 그렇게 마음을 나누며 삶의 의지를 다졌다.

“살자. 살아내자 우리. 지금처럼 뻔뻔하고 자연스럽게 살아내자.”(임재신) “항상 하는 얘기지만, 우리 같이 살자. 그저 같이 살자. 그러면 되지.”(이동우)

고희영 감독은 “재신씨가 동우씨에게 세상을 보는 눈을 뜨게 해줬다면 두 남자는 제게 살아간다는 것에 대한 경건함을 깨닫게 해줬다”며 “요즘처럼 살기 팍팍한 시대에 이들의 맑고 밝은 기운이 관객들께 조금이나마 힘이 됐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10일 개봉.












권남영 기자 kwon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