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온이 영하 2도까지 떨어진 지난 2일, 서울시청 지하의 ‘시민청’에 수십명이 모여들었다. 난방도 되지 않는 공간에서 이불 몇 개로 냉기를 견뎌내고 있었다. 이들은 지난달 5일부터 파업에 들어간 서울시정신보건지부 노조원들이다. 지난달 26일부터 철야농성도 하고 있다. 고진선 서울시정신보건지부 정책부장은 “파업이 이렇게 길어질 줄 몰랐다”고 하소연했다. 왜 이들은 한 달이 넘도록 찬바람을 맞으며 파업을 이어가고 있을까.
서울시는 25개 자치구에 정신건강증진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전화상담, 방문상담을 주로 한다. 이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파업을 하고 있는 것이다.
다른 사람의 마음을 돌보는 일을 하는 사람들이 정작 자신의 정신건강을 심각하게 위협받고 있다. 여기에다 열악한 업무환경, 고용불안까지 겹쳐 있다. 그런데도 서울시, 자치구, 민간위탁업체 어느 곳에서도 이들의 목소리를 귀담아 듣지 않고 있다.
7일 정신보건지부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전체 종사자 358명 중 87%는 여성이다. 하지만 성폭력 대책 등은 전무하다. 한국노동사회연구소 김종진 연구위원이 지난 3월 정신건강증진센터 직원 252명을 설문조사했더니 25.9%가 성희롱을 당한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일상적으로 성폭력에 시달린다고도 했다.
지난달 13일 만난 이지수(가명·29·여)씨 사례가 대표적이다. 이씨는 지난해 6월 혼자서 남성 정신질환자의 집을 찾았다가 혼비백산했다. 키 180㎝, 체중 100㎏ 건장한 체격의 50대 환자는 상담 중에 갑자기 바지를 내렸다. 이씨는 “바로 뛰쳐나가고 싶었지만 문을 한 번에 못 열어서 도망치지 못하면 어쩌나” 하는 극한의 공포를 느꼈다고 했다.
그날의 충격은 꽤 오랫동안 이씨를 괴롭혔다. 지하철에서 자리에 앉아 있는 남자들만 봐도 갑자기 그 사람들이 바지를 내릴 것만 같은 생각이 들었다. 더 큰 고통은 사건이 있고 나서도 그 남성과 한 달에 한 번 상담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센터의 다른 여성 직원들도 비슷한 상황이다. 전화상담에서 ‘생각난다, 나랑 자자’고 성희롱을 하는 남성도 잦다고 한다.
성희롱, 성폭력에 일상적으로 노출되는 가장 큰 원인은 인력 부족에 있다. 상담 대상자의 가정을 찾아갈 때 2명이 1조를 이루는 게 원칙이지만 일손이 부족하다보니 1명이 갈 수밖에 없다. 각 센터 직원은 평균 12명에 그치고, 1명당 77명을 관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여기에다 고용불안도 심각하다. 정신건강증진센터는 서울시와 자치구에서 예산을 절반씩 낸다. 대부분 센터의 운영은 민간업체에 위탁을 준다. 위탁업체가 바뀔 때마다 고용문제는 ‘뜨거운 감자’가 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서울시와 자치구, 민간위탁업체는 늘 고용 문제를 서로에게 떠넘겨 왔다. 이 때문에 센터 직원의 평균 근속기간은 3.9년에 불과하다. 한 직원은 “여성 직원 중에 한 명은 육아휴직을 신청한 지 2개월 만에 ‘복귀하지 않으면 퇴사해야 한다’는 소리를 듣기도 했다”고 말했다.
파업이 길어지고 있지만 출구는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이제 겨우 고용안정 문제를 논의하는 수준이다. 성폭력 대책 등 업무환경 개선 요구는 협상 테이블에 올라오지도 못했다. 정신보건지부 관계자는 “올해 위탁만료 예정인 8개 자치구 가운데 4곳은 고용승계를 원칙으로 하는 합의문에 사인을 했고 2곳은 합의문에 일부 수정을 요구했지만, 나머지 2곳은 아무런 답이 없다”고 전했다.
임주언 기자 eon@kmib.co.kr
[기획] 마음병 보듬다 마음 상처 ‘정신보건요원들’
입력 2016-11-07 18:18 수정 2016-11-07 21: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