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담하다. 최순실씨 국정농단의 후폭풍이 온 나라를 ‘패닉’과 ‘멘붕’ 상태로 몰아넣었다. 박근혜 대통령과 ‘사사로운 오랜 인연’이 있는 한 사인(私人)에 의해 국정이 좌지우지됐다는 사실 앞에서 국민들은 “이게 나라냐”며 절망하고 있다.
자격도 없고 검증받은 적이 없는 최씨와 그가 끌어들인 공범들이 국가기관을 사유화해 사익을 챙겨 온 정황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장·차관과 청와대 비서진 등 고위공직자 인사에 개입하고 그들을 수족처럼 부려 사욕을 채웠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아예 이들이 점령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청와대 경제수석은 물론 대통령까지 직접 나서서 대기업들에 수백억원을 뜯어내 요상한 재단을 만든 뒤 돈을 빼돌리고 각종 이권을 챙기는 발판으로 삼았다. 미적대는 기업에는 협박해 돈을 뜯어냈다니 조직폭력배와 뭐가 다른가. 국정 철학의 총화이자 국가기밀 문서인 대통령 연설문은 사전에 최씨의 손에 넘어가 수정·가필됐다. 외교안보 사안까지 포함해 국정 주요 현안이 수시로 최씨의 ‘결재’를 받아 진행됐다는 의혹도 억측만은 아닌 것 같다. 최씨가 만든 재단의 한마디가 청와대와 문체부 안에서는 ‘어명’처럼 받아들여졌다고 하니 어이가 없다. 대통령이 최씨의 이런 국정농단을 방조하고 지원까지 한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대한민국 국민인 게 부끄럽다”는 탄식이 절로 나온다. 공직사회는 ‘능멸당한’ 자괴감에 빠져 일손을 놓고 있다.
국민들의 분노는 하늘을 찌르고 있다. 지난 주말 밤 광화문광장 시국집회에 20만명이 참가했을 정도로 대통령 하야 요구가 전국에서 빗발치고 있다.
대통령이 지난 4일 2차 대국민 담화문을 통해 용서를 구했지만 그러기에는 과오가 너무 크다. 헌법이 부여한 권한을 ‘사적인 인연’에게 넘겨주고 헌정질서를 앞장서 유린한 대통령을 어찌 용서하고 인정할 수 있나. 그런 대통령에게 국가의 명운과 국민의 삶을 맡길 수 없다는 게 민심이다. 대통령은 국민의 신뢰와 권위를 상실했다. 국정을 이끌어갈 자격도 동력도 잃어버렸다. 하루빨리 하야든, 2선 후퇴든, 탈당 및 거국내각 구성이든 결단을 내리고 자신의 잘못을 남김없이 고백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더 추한 결말을 초래할 뿐이다.
이번 사건은 대통령의 거취 정리로만 마무리돼서도 안 된다. 철저한 진상규명과 관련자에 대한 엄격한 처벌을 통해 국가기강을 다시 세워야 한다. 재발 방지를 위한 제도적 장치 마련, 인적 쇄신 등을 통해 ‘새로운 시대’를 열어야 한다. 헌정 유린에 부역하며 호가호위한 공직자와 ‘친박’ 인사들의 자기반성과 퇴출이 이뤄져야 한다.
그 출발은 철저한 진상규명이다. 최씨와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 정호성 전 비서관 등이 줄줄이 구속됐고 우병우 전 민정수석 등 다른 관련자에 대한 수사가 진행 중이다.
그러나 수사의 기본원칙도 무시한 이상한 행태가 반복되면서 검찰을 믿지 못하겠다는 여론이 비등하다. 팔짱을 낀 채 웃으며 조사받는 우 전 수석과 공손한 검찰. 조선일보 7일자 1면에 실린 사진 한 장은 많은 걸 시사한다. 국가정보원 불법 대선 개입 사건을 지휘하고 수사하다 청와대에 밉보여 쫓겨난 채동욱 전 검찰총장과 윤석열 특별수사팀장 등으로 ‘특검 드림팀’을 꾸려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다. 그래야 사건의 진상을 제대로 밝히고 청와대와 유착돼 권력을 탐한 정치검사들까지 도려낼 수 있다는 것이다.
대통령에게 집중된 제왕적 권한을 분산시키는 제도적 방안도 모색해야 한다. 검찰과 경찰 등을 민정수석을 통해 청와대가 직접 통제하는 시스템을 바꾸고 검찰을 견제할 장치도 마련해야 한다.
라동철 사회2부 선임기자
rdchul@kmib.co.kr
[돋을새김-라동철] 사퇴로 끝날 일 아니다
입력 2016-11-07 18: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