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윤근(59) 국회 사무총장의 개헌 열의는 대단했다. 익히 알려진 국회의 대표적인 ‘개헌 전도사’지만 단어와 표정 하나하나에서 진정성이 느껴졌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으로 정국이 요동치는 가운데 지난 3일 서울 여의도 국회 사무총장실에서 만났다. 우 총장은 “이번 사태는 박근혜 대통령의 개인적 잘못과 제왕적인 대통령제 권력구조가 맞물려 일어났다”면서 개헌의 당위성을 거듭 강조했다. 80분간 이뤄진 인터뷰는 ‘기-승-전-개헌’이 됐다.
-‘최순실 사태’ 어떻게 보나.
“드러난 의혹만으로도 충격적이다. 과거에도 대통령 임기 말이면 여러 일들이 비일비재했지만 이번은 상상을 초월한다. 박 대통령은 가족도 없어 측근 비리가 비교적 없을 것이라는 기대가 컸던 게 사실이다.”
-본질이 뭔가.
“당사자인 대통령의 잘못이 크고 책임져야 할 부분이 가장 많다. 다음은 제왕적 대통령제의 문제다. 이 둘이 결부된 것이다. 결국 대통령 개인의 캐릭터 문제와 제도의 허점이 맞물린 것이다.”
-그럼 해결 방법은.
“일단 대통령이 모든 책임이 자신한테 있다고 인정하고 숨김없이 고백해야 한다. 그러고 난 다음에 물러나든지 거국내각을 구성하고 2선 후퇴가 되든지 해야 한다.”
-대통령이 김병준 국무총리를 지명했는데.
“거국중립내각이 되려면 최소한 여야에 총리를 추천해 달라고 하는 협의 절차가 있어야 한다. 그런데 이번에 이 절차가 제대로 되지 않았다. 선후가 잘못됐다. 대통령이 청와대 비서진을 먼저 임명하고 참모들이 여야와 국민 의견을 받아서 총리를 지명했으면 좋았을 것이다. ” (박 대통령은 8일 국회를 방문해 김 내정자 지명을 사실상 철회했다.)
-비상시국에 국회는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나.
“국회가 국정의 한 축을 담당해야 한다. 대통령이 어려움에 빠진 때일수록 협력해야 한다. 여야가 당파와 개인적 이해관계를 완전히 버리고 어떻게 하면 나라를 위기에서 구할 수 있을지에 대한 해법을 찾아야 한다. 대통령과 행정부가 제대로 일을 못하게 됐으니 국회가 한 팀이 돼서 향후 대책을 의논하는 모습을 국민들에게 보여야 한다.”
-실상은 그렇게 안 되고 있는 것 같다.
“여야가 각 당의 시선에서만 바라보고 있기 때문이다.”
-대권주자들까지 대통령 하야를 주장하고 있는데, 총장도 하야해야 한다고 보나.
“그분들 나름대로 엄중함을 얘기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국민들의 뜻을 대변하는 것은 맞는다. 하지만 여야 정치권이 당장 성급하게 하기보다는 대통령에게 시간을 줄 필요가 있다. 긴 시간을 요하는 건 아니다.”
-대통령과 국회 간 협의체제가 필요한가.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대통령이 국회에 ‘내 잘못이 큰데 도와 달라’면서 상의하는 게 맞는다고 본다.”
-그런데 왜 그게 안 되고 있나.
“여태까지 그렇게 안 해 왔기 때문에 하기가 너무 어려운 것 같다. 소통을 안 하니 위기가 가중되는 거다.”
-대통령의 통치 스타일이 바뀔까.
“쉽게 바뀌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대통령은 국민적 분노가 하늘을 찌르고 있다는 것을 느껴야 한다. 1987년 체제(대통령 직선제 도입) 이후 친인척 비리가 다 있었지만, 지금처럼 대통령이 한순간에 바닥으로 추락한 경우는 보지 못했다.”
-지금 개헌은 왜 해야 하나.
“17대 국회에서 의원 67%가 물갈이됐고 18대 45%, 19대는 49%가 교체됐다. 이번에도 44%가 바뀌었는데 정치는 언제나 똑같다. 사람을 바꾸는 걸로는 한계가 있다는 점을 입증하는 것이다. 나도 12년 의원 생활을 했지만 사람의 문제도 분명히 있다. 그러나 새 사람만 갖고 되는 게 아니다. 새 제도가 반드시 결부되어야 한다. 개헌은 어제오늘의 문제가 아니다. 10여년간 역대 국회에서 개헌이 논의되어 왔고 연구결과도 축적됐다. 이전 대통령들도 임기 말쯤 개헌에 관심을 나타냈지만 다음 대통령 하실 분들로 인해 못했다. 시기와 방법에 차이를 보이고 있지만 지금은 유력 후보들도 동의하고 있다.”
-대통령이 국회 와서 개헌 제안한 날에 국정농단 의혹이 불거졌다.
“그래서 진정성이 많이 훼손됐다. 사전에 대통령이 여야 정치권과 논의를 했다면 오해가 없었을 텐데…. 그렇다고 이 구조가 그대로 가야 하는 건 아니다.”
-현 대통령 임기 또는 20대 국회에서 개헌이 가능할까.
“추진 동력이 많이 떨어진 건 사실이다. 하지만 20대 국회에서는 완수해야 한다. 개헌을 공약으로 내세우겠다는 대선 주자들도 있고 바로 내년에 적용하자는 주자도 있다.”
-역대 대통령들은 개헌 공약을 하고도 지키지 않았다.
“공약을 확실하게 하지는 않았다. 애매했는데 이번에는 그러지 않을 것이다. 여야 의원 200명이 개헌추진모임에 들어가 있기 때문에 다음 대통령이 되실 분은 확실하게 해야 할 것으로 본다. 유력 후보라 할지라도 그 점을 명확히 하지 않고는 어려울 것이다. 시기의 문제일 뿐 이젠 모든 사람이 공감하고 있다.”
-‘최순실 사태’가 현 대통령제에 대한 반대 여론을 조성했나.
“제도가 잘못됐다는 걸 극명하게 보여줬다. 청와대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장관들도 모르고 공식 참모들도 모르고 있으니….”
-선호하는 권력구조는.
“미국식 대통령제는 우리에게 맞지 않는다. 미국은 철저하게 분권국가다. 연방대통령이 우리나라처럼 전권을 휘두르지 않는다. 우리는 4년 중임제로 가면 8년간 골병드는 나라가 된다. 우리는 또 갈등이 많은 나라다. 동서, 남북, 여야, 진보와 보수, 노사, 세대…. 이런 나라는 승자 독식구조로 가면 갈등이 더 커진다. 협의 민주주의 또 합의 민주주의로 갈 수밖에 없다. 5년 단임제 대통령에게 권한이 집중되면 장기적 정책을 펼칠 수 없다. 대통령은 국가원수로 위기 시 의회해산권 등 몇 가지 최고 권한을 주고 평시에는 의원내각제 형태로 가는 것이 좋다. 분권형 내각제인데 영국이나 일본처럼 선거를 자주해선 안 되니까 독일의 건설적 불신임제로 가야 한다. 독일은 내각제지만 불신임하면 의회를 해산하지 않고 하원에서 후임 총리를 선출한다. 선거는 거의 4년마다 했고 총리 임기도 6∼7년이다.”
-내각제를 하면 혼란이 더 클 것이라는 우려가 있는데.
“대통령제가 혼란이 더 크다. 지금은 늘 싸우는데 내각제는 내부 합의를 이끌어 낸다. 가령 스위스는 크기는 작지만 굉장히 복잡하다. 언어가 다양하고 22개 칸톤(주)이 연방제를 하고 있다. 7명이 돌아가면서 1년씩 대통령을 한다. 벨기에도 언어가 셋이다. 네덜란드어, 독일어, 프랑스어로 서로 통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늘 연정하고 합의한다. 우리는 남북으로도 모자라 경상도, 전라도, 충청도로 나눠 으르렁거린다. 정권을 잡으면 패거리 정치를 한다. 이제 위대한 지도자가 나타나 통합하는 시대는 지났다. 대한민국의 위대한 지도자는 국민이다. 시스템으로 돌아가야지, 대통령이 날 따르라는 식으론 되지 않는다.”
-국회의원 자질이 떨어진다는 비판도 있다.
“진영논리 때문에 아무리 좋은 사람이 들어와도 다 망가진다. 체면이고 뭐고 없다. 대선이 되면 더 싸운다.”
-이른바 국회선진화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는데.
“국회선전화법은 최악보다는 차악을 선택한 것이다. 선진화법이 없을 때 동물국회로 육탄전을 벌이곤 했다. 보완할 부분이 있으면 보완해야겠지만 원대복귀에는 반대다.”
-국회 사무총장을 해보니 어떤가.
“국회 공무원들이 굉장히 우수하다. 예산정책처와 입법조사처에서 행정부를 능가하는 예리한 보고서가 많이 나온다. 보고서 쓸 때 (정부) 눈치 보지 말고 소신껏 쓰라고 주문했다.”
-임기 중 꼭 이뤄 보고 싶은 일은.
“국회가 국민 신뢰도 조사에서 꼴찌다. OECD 국가 중 의원 교체율은 1, 2위를 하는데…. 왜 그럴까? 시스템에 문제가 있다. 국회가 여야로 갈려 극단적으로 충돌한다. 87년 체제의 문제점을 해결해야 한다.”
-결국 개헌을 해야 한다는 얘기다.
“그렇다. 개헌은 4가지 방향에서 추진돼야 한다. 첫 번째는 기본권 문제다. 기본권은 인간이면 누려야 할 권리다. 우리는 국민의 권리로 보고 있는데 이것부터 고쳐야 한다. 국가가 나에게 주는 것이 아니다. 다음이 권력구조 개편이고 세 번째가 선거제도를 바꾸는 것이다. 독일의 정당명부식 선거제도가 가장 합리적이다. 표를 찍은 만큼 의석을 배분해야 된다. 표의 대가성이나 등가성에 맞는다. 마지막으로 지방분권이다. 나도 지방 출신인데, 우리는 지방과 중앙의 차이가 너무 크다.”
-그간 권력구조만 부각된 것 같다.
“우리는 너무 국가지상주의다. 독일 헌법 1조는 ‘인간의 존엄과 가치는 절대 불가침이다’다. 프랑스는 ‘모든 신념을 존중한다’가 1조다. 미국은 종교의 자유다. 그런데 우리 헌법 1조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라는 권력관계다. 구시대적이다. 인간의 존엄과 권리가 어떤 것보다 앞서야 된다. 국가가 우리에게 자유와 평등을 주는 게 아니다.”
-내년 대선 화두는 뭐가 될까.
“격차해소다. 더 벌어지기 전에 바로잡아야 한다. 자본, 권력, 기회의 3대 독점구조가 지배하고 있다. 공유와 협력 모델로 가야 된다. 독점과 격차를 줄이는 것이 시대정신이다.”
-‘정치인 우윤근’의 꿈은 무엇인가.
“정치가 대결의 시대에서 협력의 시대로 가야 나라가 산다. 대결의 정치를 종식하는 데 도움이 되고 싶다.”
우윤근 사무총장은
합리적 성품으로 정평이 나 있다. 1990년 제32회 사법시험에 합격해 변호사로 활동하다 2004년 17대 총선을 통해 정치권에 들어왔다. 내리 3선을 하며 민주당 원내수석부대표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위원장,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표를 지냈다. 지난 4·13총선 때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으로 활동하며 승리에 기여했다. 하지만 정작 본인은 지역구(전남 광양·곡성·구례)에서 국민의당 후보에게 졌다. 당시 상황을 물었더니 “녹색바람이 부니까 걷잡을 수가 없더군요. 저는 국민의 판단이 늘 옳다고 생각해요. (낙선도) 정치인의 숙명이죠”라는 답이 돌아왔다. 국회 사무총장(장관급) 임기를 마치고 다시 정치판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했다. 국회 입성 때부터 꾸준히 개헌의 필요성을 강조해 왔다.
글=한민수 논설위원 mshan@kmib.co.kr, 사진=최종학 선임기자
[인人터뷰] 우윤근 국회 사무총장 “崔사태로 더 절실해진 개헌… 20대 국회선 꼭 해내야”
입력 2016-11-09 04: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