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글속 세상] 시골학교 어린이의 꿈, 베를린에서 꽃피우다

입력 2016-11-08 04:04
순천시 외서초 학생들이 지난 3일 베를린시 브란덴부르크 광장에서 한국을 소개하는 ‘러블리 한복, 러블리 코리아’ 공연의 하나인 부채춤을 선보이고 있다. 독일 베를린에서 4일부터 15일까지 열리는 현대음악베를린 페스티벌에 한국의 전라남도 순천시에서 온 외서초등학교 학생 22명과 여수시 소호초등학교 학생 51명이 한·독 음악교류차원에서 참여했다.
외서초 학생들이 지난 2일 베를린시 페르가몬 박물관 앞에서 한지에 ‘독도는 한국땅’ 그림 그리기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위 사진). 소호초·외서초 학생들이 지난달 30일 독일 오케스트라 단원들과 베를린 밀데르드 하르낙 학교 강당에서 연습하고 있다.
외서초 학생들이 지난달 31일 연습장으로 가기 위해 베를린 시내에서 지하철을 타며 신기한 표정을 짓고 있다(왼쪽 사진). 한국의 소호초 오케스트라(지휘자 최재식)와 외서초의 연주에 맞춰 독일의 헨델슐레합창단이 ‘아리랑’과 ‘고향의 봄’을 합창하고 있다.
외서초 강미르 학생(오른쪽)이 지난달 30일 11세 동갑내기인 독일 친구와 함께 밀데르드 하르낙 학교 정원에서 연습하고 있다.
소호초·외서초 학생들이 지난달 30일 밀데르드 하르낙 학교에서 연습을 마친 뒤 독일 친구들과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놀이를 하고 있다.
찬바람이 초겨울을 재촉하던 지난 4일(현지시간) 독일 베를린. 동서독 분단의 상징인 베를린 장벽 바로 아래에 위치한 베를린시 포츠다머 플라자 U3 연주장에서 독일 최고 작곡가 겸 지휘자인 욥스 리베르흐트(55)와 200명이 넘는 오케스트라와 합창단의 아름다운 유영(遊泳)이 펼쳐졌다.

베를린에선 그날부터 오는 15일까지 현대음악베를린 페스티벌이 열리고 있다. 이번 축제에 참가한 140여명의 독일 프라이에 융겐 오케스트라에는 우리나라 전남 여수시 소호초(교장 김준) 학생 51명과 순천시 외서초(교장 한미희) 학생 22명도 포함돼 있다. 한국의 남도 끝에서 온 73명의 어린 연주자들이 한·독 음악교류 차원에서 독일음악학교 단원들과 함께 국제 음악축제에 참가한 것이다.

이들은 축제 첫날 첫 번째 팀으로 무대를 꾸몄다. 소호초 오케스트라(지휘 최재식)의 관현악 연주에 이어 외서초 학생들이 헨델슐레청소년합창단과 함께 등장했다. 양국 청소년들이 아름다운 하모니로 ‘아리랑’과 ‘고향의 봄’을 연주하자 공연장을 가득 메운 베를린 시민들은 큰 박수와 환호로 격려했다. 피날레는 작곡가 욥스 리베르흐트가 가야금, 징, 꽹과리 등 한국의 전통악기와 서양 악기의 다양한 소리를 접목해 현대음악으로 재해석한 곡 ‘라블린(Labyrinth)’이 장식했다. 500여명의 청중들은 덩실덩실 춤까지 추며 축제의 장을 연출했다.

모든 공연을 마친 연주자들과 선생님, 함께 온 학부모 등은 하나같이 벅찬 표정이었다. 처음 쥐어본 바이올린과 씨름하며 지난여름 살인적인 더위를 이겨냈던 아이들. 낯선 땅에서 자신의 키만한 악기를 이고 수차례 전철과 버스를 갈아타며, 매일같이 현지 음악학교에서 연습했던 노력의 결과였다.

특히 몇 해 전부터 베를린의 유명 음악학교와 상호 초청 방문하면서 자리가 잡힌 소호초 오케스트라와 달리 순천시에서도 끝자락에 위치한 오지 학교 외서초의 베를린행은 꿈 같은 일이었다.

외서초는 전교생이 23명에 불과해 한때 복식학급(2개 학년이 한 교실에서 통합 수업) 위기에까지 몰렸다. 하지만 지난해 9월 한미희 교장이 부임하면서 학교는 활기를 찾기 시작했다. 소외된 농촌학교의 미래를 위해 고민하던 한 교장은 꿈과 비전이 넘치는 학교를 만들기 위해 선생님들과 머리를 맞댔다. 한·독 음악 교류는 ‘작은 학교 희망 만들기’의 첫 번째 프로젝트였다.

한 교장은 K-water(한국수자원공사) 주암댐관리단의 적극적 지원에 힘입어 순천시, 순천교육지원청, 전남예총, 순천예총, 전라남도교육청의 후원 약속을 받아냈다. 지난 2월에는 독일로 직접 날아가 프라이에 융겐 오케스트라 학교(Berlin Freie Jugend orchester schule)와 양해각서(MOU)를 체결하고 20여명 학생들의 음악캠프 참가와 페스티벌 초청 약속을 받아냈다.

학생들의 독일행이 결정되고 한 교장의 창의적인 교육 시도가 좋은 평가를 받으면서 올 들어서는 10명 학생이 외서초로 전입하기도 했다. 연주회를 무사히 마친 뒤 한 교장은 “목표를 갖고 날마다 성장하는 학생들을 지켜보는 기쁨이 컸다”며 “12일간의 안전한 베를린 일정을 위해 밤을 새운 선생님들, 짧은 기간 내에 학생들의 연주 실력을 키워준 전문 음악강사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외서초 학생들은 음악캠프 참여 외에도 브란덴부르크 광장과 한국문화원에서 한국을 소개하는 ‘러블리 한복, 러블리 코리아’ 공연을 가졌다. 베를린시 박물관 섬 안에 있는 페르가몬 박물관 앞에서 독도가 한국 땅임을 알리는 한지에 그림 그리기 퍼포먼스도 진행했다.

베를린 음악캠프 프로젝트에 동참한 K-water 주암댐관리단 박미자 과장은 “이번 유럽 음악축제 참여로 아이들에게 자신감을 심어주고 글로벌 인재로 성장하기 위한 동기 부여가 됐을 것”이라며 “K-water는 댐 주변 지역을 위해 매년 댐 발전 판매 수익금과 댐 용수 판매 수입금 일부를 지원하고 있다. 앞으로도 미래 희망인 아이들의 교육지원 사업에 더욱 힘쓰겠다”고 밝혔다.











베를린=글·사진 곽경근 선임기자 kkkwa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