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동(立冬)을 이틀 앞둔 지난 5일 낮 12시. 경기도 안양시 동안구 평촌교회(림형석 목사) 지하 1층 식당 만나홀 배식구 앞에 긴 줄이 늘어섰다. 쌀쌀한 날씨 속에 모자와 겨울 외투로 몸을 감싼 70대 전후의 어르신들은 모락모락 김이 나는 밥과 국을 받아 ‘육신의 양식’ 한 끼를 해결했다.
지난해 창립 50주년을 기념한 평촌교회는 이 지역에서 가장 긴 역사를 지닌 어머니 교회다. 주위가 온통 논밭뿐이었고 가난한 이들과 병자들이 태반이었던 반세기 전부터 교회는 이웃을 향한 나눔과 섬김 사역을 꾸준히 이어오고 있다.
◇지역 주민들 위한 ‘연중무휴’ 교회=평촌교회가 지역 독거노인과 노숙자 등을 대상으로 펼치는 점심 무료급식은 조금 특별하다. 교회와 교역자들이 모두 쉬는 월요일을 빼고 화요일부터 주일까지 교회 주방이 쉬지 않는다는 것. 상당수 교회들이 주일과 특정 행사가 있는 날을 제외하고 교회 주방을 대체로 사용하지 않는 것과 비교가 된다.
림형석 담임 목사는 “어르신 무료급식을 이어온 지는 20년도 넘었다”면서 “일주일 중에 하루 이틀만 점심을 드린다는 게 왠지 죄송스러워서 매일 급식을 이어가게 됐다”고 설명했다. 평일 교회 식당을 찾는 어르신들은 평균 60∼70명 정도다. 목요일에는 인근 지역에 기거하는 노숙인들에게 소정의 용돈도 지급하며, 한달에 한번은 함께 예배도 드린다.
교회 주방만 매일 돌아가는 건 아니다. 지난 3일 오전 11시. 교회 앞마당을 가로질러 위치한 평촌교육문화센터아가페(아가페센터). 늦가을 햇살이 가득한 7층 꿈마루 도서관에 들어서자 2만3000여권의 장서들 한 켠에서 주부 수강생들이 ‘자기주도학습’ 강좌에 푹 빠져 있었다. 학생들이 몰리는 오후 시간대를 피해 오전에 진행되는 강의였다.
같은 시각 5층 생활체육실. 유리창 틈새로 경쾌한 음악과 함께 10여명의 주부들이 ‘라인댄스’(여러 사람이 줄지어 추는 춤) 동작을 일사분란하게 따라하고 있었다. 2층에서는 임신부 등을 대상으로 한 태아학교 강의가 진행 중이었고, 프랜차이즈 카페 못지않게 세련된 1층 카페는 평일인데도 성도와 주민들로 가득했다.
5년 전 평촌교회가 설립한 센터는 성도뿐만 아니라 지역 주민들을 위한 문화·여가 공간으로 주민문화센터와 크게 다를 바 없어 보였다. 교회 봉사·복지 사역을 담당하는 이상하 목사는 “음악·미술·취미·스포츠 등 연간 개설 강좌가 100여개에 달한다”면서 “평일에만 1000여명 이상이 드나들고, 그 가운데 70∼80%는 지역 주민”이라고 말했다.
◇‘교회 명물’ 바자회가 주민 섬김·화합 도구로=지난달 말 사흘간 펼쳐진 ‘지역사회를 위한 사랑나누기바자회’는 올해도 ‘대박’이었다. 29년째 이어지고 있는 바자회는 지역의 명물로 자리 잡았다. 매년 이맘때가 되면 주민들 사이에서는 “평촌교회 바자회는 언제 열리냐” “바자회가 기다려질 정도”라는 얘기도 나온다.
교회에 따르면 바자회에는 출석 성도의 약 3분의 1인 1300명 정도가 물품 판매와 음식준비, 설거지, 주차, 배달 등에 동참한다. 130여개에 달하는 상품 판매대에는 음식과 의류, 공산품, 농수산물 등 500여개 품목이 진열된다. 하루에 수천 명씩, 사흘간 1만 여명 이상 다녀가는 행사로 순이익 규모만 평균 1억원. 수익금 전액은 교회 안팎의 어려운 이들을 위해 골고루 쓰인다. 바자회가 꾸준한 사랑을 받는 이유는 뭘까.
올해 20년째 바자회에 참여하고 있는 김영철(50·여) 권사의 설명이다.
“음식이든 물품이든 싸고 맛있고 질 좋은 제품을 준비하거든요. 바자회를 마치면 몸살을 앓을 정도로 교역자들과 성도들 모두가 정성을 다해요. 행사 준비부터 마무리할 때까지 쉽지 않은 일이지만 이렇게 해서 어려운 분들도 돕고, 주민들과 정도 나눌 수 있는 게 너무 너무 감사해요.”
평촌교회 성도들이 ‘이웃 섬김이 이렇게 값진 일이구나’라고 여기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다. 지난해 교회 창립 50주년을 기념해 펼쳐진 ‘봉사 대행진’이 큰 역할을 했다. 전 성도가 교회 안팎에서 저마다 ‘1인 1봉사’를 실천한 것. 공원 청소부터 이·미용 봉사, 택시기사 생수 전달, 독거노인 반찬봉사 등 섬김 분야는 각양각색이었다. 일회성으로 끝날 줄 알았던 섬김 사역은 지난 1년 사이 생각지도 못한 열매를 맺고 있다고 림 목사는 귀띔했다.
“많은 성도들이 봉사를 하면서 자연스럽게 지역 사회 곳곳에 관심을 갖게 되더라고요. 관심을 갖게 되니까 기도하며 애정을 갖게 되고, 또 계속 들러서 만나게 되고…. 그러다보니 봉사를 멈출 수 없어서 계속 이어가는 분들이 많아요. 감사한 일입니다.”
■ 평촌교회 림형석 목사
‘나부터 □캠페인’ 빈 칸에 ‘정직’과 ‘진실’
“사랑을 행동으로 실천할 때 하나님 드러나”
“‘나부터 정직하게’ ‘나부터 진실하게’가 가장 절실한 때입니다.”
지난 3일 경기도 안양 평촌교회 집무실에서 만난 림형석(사진) 목사는 종교개혁 500주년을 앞두고 한국교회가 펼치고 있는 ‘나부터 □캠페인’ 빈 칸에 ‘정직’과 ‘진실’을 채워 넣었다.
“지역사회에서도 목회자나 성도들이 입으로만 ‘사랑합시다’를 외치는 건 아무런 감동을 주지 못합니다. 어디에서 무엇을 하든지 말이 아닌 행동으로 사랑을 실천하는 것, 그리고 그 사랑을 몸소 보여줄 때는 정직하고, 진실하게 행하는 것이 곧 거룩한 하나님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이 지역에서 가장 역사가 깊은 평촌교회는 그만큼 책임감도 커 보였다. 교회 4대 담임으로 부임해 13년째 섬기고 있는 림 목사는 “반세기 전만해도 교회 주변으로는 가난하고 어렵게 사는 분들, 특히 병자들이 많았다고 들었다”면서 “1대 목사님께서는 치유 사역을 많이 하셨고, 2대 때는 사랑나누기 바자회가 자리매김하면서 교회는 자연스럽게 지역 사회를 향한 나눔과 섬김에 관심을 가져왔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지금은 교회 주방이 쉬는 날이 없을 정도로 나눔과 섬김 활동이 활발하다”면서 “5년 전 교회 앞에 새로 건립한 ‘아가페센터(평촌교육문화센터)’ 역시 지역사회를 섬기는 건물로 유용하게 쓰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평촌교회는 지금 세이레 새벽기도회가 한창이다. 성도들은 각자가 한 끼를 굶으며 나라와 민족, 이웃과 교회를 위해 기도의 불꽃을 모으고 있다. ‘최순실·최태민 사태’로 온 나라가 시끄러운 상황에서 림 목사의 시선은 바깥이 아니라 오히려 안쪽으로 향해 있었다.
“지금은 남을 향해 손가락질을 할 때가 아닌 것 같아요. 그리스도인 각자가 스스로를 돌아보며 회개하며 기도할 때입니다.”
안양=박재찬 기자 jeep@kmib.co.kr
[한국의 공교회-안양 평촌교회] 어르신은 급식·어린이는 독서삼매경… “교회 맞아?”
입력 2016-11-08 21: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