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지러운 시대, 깨어나는 개혁정신… 루터는 잠들지 않았다

입력 2016-11-07 21:31
종교개혁일을 맞아 비텐베르크를 방문한 이들이 지난달 31일 마르틴 루터가 반박문을 붙였던 ‘테제의 문’ 앞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다. 루터는 499년 전 95개조로 된 면죄부 반박문을 붙여 ‘종교개혁의 횃불’을 밝혔다.
루터가 성경을 독일어로 번역했던 바르트부르크성 루터의 방.
슈말칼텐 조지교회 기둥에 새겨진 루터의 부조(위)./ 루터 시대의 복장을 한 젊은 여성들이 지난달 31일 비텐베르크 거리를 걷고 있다(아래).
미국, 스위스, 헝가리, 한국 등 전 세계에서 온 크리스천들이 지난달 31일 오전 독일 비텐베르크 성교회에서 예배를 드리고 있다.
어지러운 시대다. 오로지 양심의 주인이 되는 하나님께 의지했던 종교개혁가 마르틴 루터(1483∼1546). 종교개혁 500주년을 1년 앞두고 루터가 걸었던 길을 걸으며 오늘날 우리 그리스도인이 가야할 방향을 고민해 본다. 국민일보는 지난 2일까지 종교개혁일(10월 31일) 전후 일주일 동안 독일 관광청 초청으로 루터를 주제로 한 인터내셔널 프레스 투어에 참여했다.

사랑의 길

루터가 소년기를 보낸 아이제나흐에서 ‘루터와 함께 침대에서(In Bed with Martin Luther)’란 일본의 설치예술가 탓주 니시(56)의 작품을 볼 수 있었다. 기존 루터의 동상에 가건물을 설치해 루터가 침대에 있는 것처럼 꾸민 것이다. 우리가 루터의 정신을 잊은 채 그와 함께 잠들지는 않았는지 묻는 듯했다.

아이제나흐의 가장 큰 광장 앞에는 루터가 성가대원으로 활동했던 게오르크교회가 우뚝 서 있었다. 가정 형편이 넉넉지 않았던 루터는 부유한 가정의 아이들을 돌보며 교회에서 성가대원으로 봉사했다. “루터는 그 가정에서 가족들의 사랑을 받았고, 탁월한 찬양 솜씨로 교회에서도 인정받았습니다.” 현지 가이드가 지난달 30일 광장에 서서 설명했다.

루터는 “음악은 말씀 다음으로 소중한 이 땅의 보물”이라고 했다. 그는 하나님과 그의 말씀과 찬양을 사랑했다. 루터는 소중한 기억을 남겨준 아이제나흐를 ‘사랑하는 도시’라고 불렀다. 루터가 살던 집을 개조한 ‘루터하우스’는 그의 생애와 사상을 한눈에 볼 수 있도록 꾸며져 있었다. 이곳을 방문한 30일 오전, 갑자기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마침 독일개신교연합(EKD) 하인리히 베드포드 스토름 의장이 이곳을 방문했던 것이다. 현지인들은 베드포드 의장의 모습을 연신 휴대전화로 촬영했고, 미소 띤 얼굴로 그의 말을 경청했다. 아이제나흐로 오는 기차 안에서 만난 한 독일인이 오버랩 됐다. 그녀는 “난 루터를 매우 자랑스러워해요. 그는 교회를 바꿨고, 독일을 바꿨습니다”라고 했다. 독일인들은 루터와 그 전통을 잇는 교회를 사랑하고 있었다.

진리의 길

루터가 청년기 수도사로 지냈던 에르푸르트 아우구스티누스수도원을 방문했다. “루터는 이 수도원에서 성경을 원어로 읽고 말씀의 진리를 깨달았습니다. 당시 교회가 하나님 말씀에 크게 어긋난다는 것을….” 가이드가 수도원의 도서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호텔로 사용되는 기숙사는 내년까지 예약이 꽉 차 있다고 했다.

루터가 비텐베르크대학에서 성서학 강의를 하던 무렵 로마 가톨릭교회의 면죄부 판매가 횡행했다. 루터는 이에 대한 반박문을 비텐베르크 성(城)교회에 붙였다. 499년 전 10월 31일 루터가 반박문을 붙인 교회에선 전 세계에서 온 사람들이 종교개혁 기념예배를 드렸다. 비텐베르크는 종일 축제 분위기로 들썩였다. 사람들은 루터 시대의 복장을 한 채 거리를 오갔고, 기념 전시회와 퍼레이드가 한창이었다.

루터는 1521년 보름스에서 황제의 심문을 받지만 굴복하지 않았다. “나의 양심이 하나님의 말씀에 사로잡혀 있는 한 나는 아무 것도 철회할 수 없고 그렇게 할 생각도 없습니다.” 루터는 아이제나흐 바르트부크르성에 숨어 쉬운 독일어로 성경을 번역한다. 극소수 성직자의 전유물이었던 성경 말씀이 그리스도인 모두의 손에 쥐어진 것이다. 그가 머물렀던 성 주변은 노랗고 붉은 단풍이 들어 있었다.

“이 성은 매년 음악회나 여러 회의가 열리고 있습니다.” 성 안내자가 전했다. 루터 지지자들은 1531년 슈말칼텐 동맹을 결성했고, 24년 뒤 아우구스부르크 조약으로 종교의 자유를 쟁취한다. 독일 정부와 교회는 현재 580개가 넘는 루터 관련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마르틴 루터의 고향’ 독일은 루터를 매일 기억하며 내년 종교개혁 500주년을 준비하고 있다.

아이제나흐·에르푸르트·비텐베르크·슈말칼텐

글=강주화 기자, 사진=곽경근 선임기자 rula@kmib.co.kr, 그래픽=이영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