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 ‘관제 민족주의’ 기치 아래 탄생한 ‘단색화’는 전통의 현대화 성공사례로 회자되며 국제무대에서 한국 대표 브랜드로 자리를 굳혔다. ‘단색화’는 과연 정답인가. 그 견고한 지위에 균열을 내려는 듯 ‘전통의 계승은 무엇인가’를 되묻는 전시가 열려 입소문이 나고 있다.
경복궁 서문인 영추문 바로 건너편, 서울 종로구 효자로 갤러리 ‘인디프레스’에서 막바지 손님몰이를 하고 있는 기획전 ‘앉는 법’이 그것이다.
미술평론가인 이영욱씨(전주대 교수)가 기획한 이 전시의 제목은 한국의 모더니스트 김수영(1921∼1968)의 대표 시 ‘거대한 뿌리’(1968)의 첫 소절 ‘나는 아직도 앉는 법을 모른다’에서 따왔다. 식민과 근대를 거쳐 오며 느끼는 문화적 혼돈과 불안정을 각각 남과 북, 일본의 영향을 받은 지인들의 앉음새를 가지고 암시하던 시인은 1890년대 한국을 방문했던 영국인 이자벨 비숍 여사의 글과 그녀의 시선에 공명한다. 그리하여 외면했던 전통(역사)에 대해 새로운 깨달음을 얻고 마침내 ‘전통은 아무리 더러운 전통이라도 좋다’고 토로하기에 이른다.
전시장엔 전통 잇기, 전통의 재해석, 전통에 대한 반기 등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는, 작고 작가와 중견·신진작가를 망라한 24명의 작품이 나왔다. 금분에 아교를 섞은 금니(金泥)를 쓰는 ‘이금산수’ 기법을 차용한 김지평의 ‘관서팔경’은 전통방식을 그대로 써서 오히려 낯설다. 이은실은 은은한 동양화 같은 표면감을 고수하면서 동양화 소재에서는 배제했던 노골적인 성적 암시를 담은 이야기를 담아 전통을 전복한다.
탱화나 산수화를 연상시키는 전통적 방식에 군인, 양민, 삐라, 부적, 휴전선 등 현대사의 상흔을 환기시키는 소재를 합성했던 작고 작가 오윤과 함께 신학철, 민정기 등 민중미술 대가들의 작품도 같은 맥락에서 초대됐다.
30여점의 작품이 어깨를 부딪치지 않을 만큼 올망졸망 걸려있거나 바닥에 놓여졌지만, 사람의 발길을 붙잡는 각각의 힘은 크다. 13일까지(010-7397-8498).
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
전통은 아무리 더러운 전통이라도 좋다?
입력 2016-11-08 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