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물 빚으신 하나님을 전합니다… 평일은 도예 공방으로 ‘빚음의 목회’

입력 2016-11-06 20:51
서울 강북구 토기장이교회의 신상엽 목사와 윤경순 사모가 토기로 만든 작품을 들고 활짝 웃고 있다. 아래 사진은 토기장이교회의 외관. 김보연 인턴기자

지난 2일 서울 강북구 4·19로의 한 골목길. 붉은색 창문과 출입구가 인상적인 카페 앞마당에 가을햇살을 흠뻑 머금은 플라타너스 낙엽들이 연갈색 카펫처럼 깔려 있었다. 잔잔한 피아노 선율이 흐르는 카페 안으로 들어서자 작업용 앞치마를 두른 사람들이 탁자 위에 놓인 크고 작은 토기에 유약을 바르고 있었다. 도예 공방 카페 ‘토기장이의 집’의 강사인 윤경순(45) 사모는 “작품마다 어떤 색 유약을 바르느냐에 따라 그 형체와 작품에 담아내고자 하는 의미를 더 선명하게 해 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곳은 토기장이교회 신상엽(45) 목사와 윤 사모가 5년 전 문을 연 사역지다. 평일엔 도예 강의를 진행하고 커피와 차가 판매되는 도예 공방 카페였다가 주일이면 교회로 변신한다. 그 시작은 대학 시절 도자공예를 전공한 신 목사가 26세 때 어머니의 임종과 함께 삶의 전환점을 맞으면서부터였다.

“어머니께서 눈 감으시던 순간 곁을 지키며 손을 잡아드렸는데 그 촉감이 마치 도자기를 빚기 위해 준비한 흙의 촉촉하면서도 차가운 느낌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그 코에 생기를 불어넣으시니 생명이 됐다’는 말씀이 단순히 문자가 아님을 깨닫게 됐지요. 그날로 신학을 준비한 것이 여기까지 오게된 겁니다.”

처음부터 목회에 도예를 접목한 것은 아니었다. 현 위치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2010년 상가교회를 개척했다. 그곳에서 목회하던 2년여 동안 신 목사는 ‘교회 공간의 비효율성’과 ‘그 공간에서 접촉할 수 있는 대상이 제한돼 있다는 것’을 절실히 깨달았다. 문제점을 인식하고 나니 목표가 확실해졌다.

“‘다양한 대상에게 언제나 복음을 전할 수 있는 효율적 공간’을 고민하다 북한산 둘레길로 향하는 동네 골목길들이 카페거리로 변모해가는 모습을 보게 됐죠. 거기에 ‘전공을 살려서 공방을 해봐야겠다’는 생각을 얹은 것이고요. 도예는 은퇴 후 할아버지가 되어서나 다시 할 줄 알았는데….(웃음)”

입구에 처음 걸린 간판은 ‘기독교대한감리회 토기장이교회’였다. ‘명색이 교회인데 오는 사람들에게 교회임을 알려야지’라는 생각에서였다. 하지만 그 간판이 걸린 것은 딱 하루뿐이었다. 신 목사는 “간판을 달고 보니 ‘여기는 물리적으로 교회라는 건물이야. 불신자는 오지마!’라고 외치는 것 같았다”며 “결국 간판제작 업자를 다시 불러 하루 만에 간판을 교체했다”고 회상했다. 현재 입구엔 ‘카페 토기장이의 집’이라고 적힌 목재 간판이 손님들을 맞이한다. 일요일마다 입구에 ‘토기장이교회’라는 간이 세로간판이 세워진다.

간판은 달라도 주중의 ‘토기장이의 집’과 주일의 ‘토기장이교회’는 결코 분리된 것이 아니다. 윤 사모는 “수강생의 대부분은 도예를 공부하러 온 비기독교인이지만 2∼3시간씩 차분하게 흙을 빚으며 서로의 희로애락을 내려놓다보면 ‘지금 이 순간을 빚어가는 조물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며 웃었다. 1200도로 달궈지고 있는 가마를 바라보며 신 목사가 거들었다.

“창조주의 섭리가 도예에 다 들어있습니다. 주께서도 흙으로 우리를 빚으시고 날카로운 것들은 제거하시며 보호하기 위해 말씀의 피막을 입히시죠. 토기장이의 마음으로 살아가는 것. 그것이 곧 창조주를 향한 우리의 마음가짐이어야 합니다.”

글=최기영 기자 ky710@kmib.co.kr, 사진=김보연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