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 움켜쥔 채 “특검 수사 수용”… 朴 대통령, 열흘 만에 두번째 대국민 사과

입력 2016-11-04 18:22
박근혜 대통령의 지난달 25일 첫 대국민 담화(왼쪽 사진)와 4일 두 번째 담화 모습. 첫 담화 때는 비교적 차분한 표정으로 90초 분량의 담화문을 읽었지만, 두 번째 담화에선 시종 굳은 표정으로 이따금 눈시울을 붉혔다. 이병주 기자

박근혜 대통령이 4일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와 관련, 대국민 사과와 함께 검찰 및 특별검찰 수사를 모두 수용하겠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현직 대통령이 검찰 수사를 받는 것은 대한민국 68년 헌정 사상 초유의 일이다.

그러나 박 대통령은 이번 사태의 여러 의혹에 대한 구체적 해명, 책임총리에 대한 권한 부여 등 정국 수습방안은 직접 언급하지 않았다. 국정 최고책임자로서 모든 것을 내려놓겠다는 의지가 부족한 ‘감동 없는 사과’로는 대통령 하야, 탄핵까지 거론되는 현 상황을 극복하긴 어렵다는 지적이 많다. 야권은 박 대통령 담화를 ‘개인적 반성문’으로 규정했다. 그러면서 김병준 국무총리 내정자 지명 철회, 국정조사 수용 등을 요구하는 등 더욱 거센 공세를 이어갔다.

박 대통령은 오전 춘추관에서 대국민 담화 ‘국민 여러분께 드리는 말씀’에서 “이번 최순실씨 사건으로 이루 말할 수 없는 큰 실망과 염려를 끼쳐드린 점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의 사과는 지난달 25일 이후 열흘 만에 다시 이뤄졌다. 최씨와의 관계에 대해선 “제가 가장 힘들었던 시절에 곁을 지켜줬기 때문에 저 스스로 경계의 담장을 낮췄던 것이 사실”이라며 “저 스스로 용서하기 어렵고 서글픈 마음이 들어 밤잠을 이루기도 힘이 든다”고 했다.

박 대통령은 특히 “필요하다면 저 역시 검찰 조사에 성실히 임할 각오”라며 “특별검사에 의한 수사까지도 수용하겠다”고 밝혔다. 또 “이 모든 사태는 모두 저의 잘못이고, 저의 불찰로 일어난 일”이라며 “어느 누구라도 수사를 통해 잘못이 드러나면 그에 상응하는 책임을 져야 하고, 저 역시도 모든 책임을 질 각오가 돼 있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저는 이번 일의 진상과 책임 규명에 최대한 협조하겠다”며 “앞으로 검찰은 어떠한 것에도 구애받지 말고 명명백백하게 진실을 밝히고 이를 토대로 엄정한 사법처리가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박 대통령은 책임총리에 대통령 권한 위임 또는 책임총리제 보장 등 구체적인 수습방안은 일절 거론하지 않았다. 담화에선 “더 큰 국정 혼란과 공백상태를 막기 위해 정부가 본연의 기능을 하루속히 회복해야 한다”고만 했다. 청와대는 “박 대통령 담화는 김 내정자에게 책임총리로서의 모든 권한을 주겠다는 것을 전제로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박 대통령 자신이 여전히 국정 운영의 주도권을 놓지 않겠다는 안이한 상황인식이 반영됐다는 비판도 나온다. 한광옥 청와대 비서실장도 국회 운영위에서 ‘박 대통령이 국정 일선에서 물러날 것을 건의하겠느냐’는 질문에 “저로선 그런 것을 건의할 생각이 없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은 담화 발표 이후 여야대표 회담 추진, 추가 사과 등을 통해 정국 수습을 시도할 것으로 예상된다. 상황은 불투명하다. 야권은 박 대통령에 탈당부터 ‘2선 퇴진’까지 전방위적으로 요구를 쏟아냈다. 더불어민주당은 박 대통령에게 특검 및 국정조사 수용, 총리 지명 철회 및 내·외치 국정 포기, 국회 추천 총리 지명을 요구했다. 민주당 추미애 대표는 “거부 시 정권 퇴진 운동을 전개할 것”이라고 말했다. 국민의당은 박 대통령 탈당과 3당 영수회담을 통한 새 총리 임명을 요구했다. 박지원 비상대책위원장은 “이를 거절할 경우 하야 외엔 답이 없다”고 말했다.

글=남혁상 강준구 기자 hsnam@kmib.co.kr, 사진=이병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