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기자-이도경] 상황 파악 못하는 교육부

입력 2016-11-04 18:00 수정 2016-11-04 19:26

“고지(高地)가 눈앞인데 물러설 수 없습니다.” 교육부 역사교육정상화추진단 관계자는 4일 전화통화에서 국정 역사교과서 강행 방침을 거듭 밝혔다. 대통령 지지율이 5%로 추락하고, 박근혜 대통령이 두 번째로 대국민 사과를 한 날이지만 ‘변함없다’는 입장이다.

내년 새 학기부터 중학교 ‘역사’와 고교 ‘한국사’를 국정 교과서로 가르친다는 ‘국정화’는 박 대통령이 의지를 갖고 교육부를 다그쳐 추진했다는 게 정설이다. 하지만 박 대통령이 내치(內治)를 맡긴다며 낙점한 ‘책임총리’는 국정 역사교과서에 강한 거부감을 가진 김병준(62) 국민대 교수다. 그는 총리에 취임하면 국정화를 전면 재검토하겠다는 뜻을 공식화했다.

김 총리 내정자가 국회 인준을 받을지는 불투명하다. 다만 교육부 입장에서 중요한 건 그의 지명에 담긴 메시지다. 박 대통령은 국정화에 미련이 없거나 챙길 여력조차 없다는 게 그것이다.

여당도 ‘제 코가 석자’다. 지난해 11월 3일 국정화를 확정하면서 당시 황교안 총리를 중심으로 정부·여당이 똘똘 뭉쳐 교육부를 지켜주던 것과 완전히 달라졌다.

반면 ‘최순실 교과서’라는 의혹은 상당한 설득력을 갖고 역사학계와 시민사회로 퍼져 나가고 있다. 의혹의 요지는 이렇다. 국정화를 주도한 김상률(56) 전 청와대 교육문화수석은 최씨의 최측근 차은택(47)씨의 외삼촌이다. ‘최순실 사단’이라 볼 수 있다. 최씨가 차씨를 통해 문화계 이권에 개입했듯이, 김 전 수석을 통해 각종 교육 정책에도 개입했을 것이다.

평소라면 “최순실이 교과서에 영향 끼치는 게 상식적으로 맞는 소리인가”라는 말이면 충분히 해명됐을 일이다. 그러나 지금은 그렇지 않다. 민간인이 각종 정부정책을 주무른 ‘엽기적 사건’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교육부가 국정화를 계속 추진하려면 최씨와 국정 역사교과서가 무관하다는 걸 입증하는 게 도리이고 순서다. 분노에 치를 떠는 국민에 대한 예의이기도 하다. “교과서 내용을 보면 국민 생각이 달라질 것”이라며 밀어붙이는 건 교육부의 오만함으로 비쳐진다. 가뜩이나 ‘국민은 개돼지’라는 한 간부의 발언으로 곤욕을 치른 교육부 아니던가.

세종=이도경 기자 yid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