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의 4일 대국민 담화에는 최순실(60·구속)씨의 국정농단에 대해 도의적 책임을 인정하면서도 법적 책임을 부인하는 속뜻이 담겨 있다. 박 대통령은 “필요하다면 저 역시 검찰의 조사에 성실하게 응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미르·K스포츠재단을 둘러싼 위법행위들과의 직접적 연관성은 미리 부정했다는 평가가 많다. 헌정 사상 처음으로 펼쳐질 검찰의 현직 대통령 수사를 앞두고 또다시 청와대가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는 반응까지 나온다.
박 대통령은 이날 미르·K스포츠재단 설립에 대해 “국가경제와 국민의 삶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바람에서 추진된 일”이라고 했다. 이미 안종범(57)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이 재단 설립 과정에 박 대통령의 지시가 있었음을 진술했다고 전해지는 상황에서, 재단의 설립 취지만큼은 정당했음을 강조한 말이다. 대기업들에 강제모금을 했다고 조사된 최씨와 안 전 수석은 이미 체포돼 구속됐거나 구속영장이 청구된 상태다.
박 대통령은 이어 “그 과정에서 특정 개인이 이권을 챙기고 여러 위법행위까지 저질렀다고 하니 너무나 안타깝고 참담한 심정”이라고 말했다. 법원이 구속영장을 발부하며 인정한 최씨의 범죄사실을 ‘저질렀다고 하니’라는 ‘전언(傳言) 방식’으로 표현함으로써 자신은 사전에 알지 못했던 범죄라고 선을 그은 셈이다. 결국 박 대통령의 말을 종합하면 ‘두 재단의 설립 취지는 정당했지만, 내가 모르는 사이 최씨가 위법행위를 저질렀다’는 얘기가 된다.
박 대통령은 최씨와 안 전 수석이 검찰 수사를 받고 있는 상황을 언급하며 “모든 사태는 저의 잘못이고 저의 불찰로 일어난 일”이라고 했다. 그러면서도 “주변 사람들에게 엄격하지 못한 결과”라고 덧붙였다. 이를 두고 미르·K스포츠재단 설립 과정에서 벌어진 위법행위의 주체를 자신이 아닌 ‘주변 사람들’로 한정지은 것이라는 해석이 제기된다.
야당 등 정치권에선 이러한 박 대통령의 발언들이 검찰에 ‘수사 가이드라인’을 보여준 것이라는 비난이 크다. 청와대는 검찰의 ‘NLL 대화록’ 수사, 채동욱 전 검찰총장 사건 수사, ‘성완종 리스트’ 사건 수사 등에서 수사 방향을 제시했다는 비판을 받아 왔다.
이번 사건과 유사한 이른바 ‘정윤회 문건 사건’이 불거진 2014년 말에 박 대통령은 “문건을 외부에 유출하게 된 것은 결코 있을 수 없는 국기문란 행위”라고 말했었다. 당시 검찰은 유출됐다는 문건을 ‘찌라시’라고 하면서도 대통령기록물관리법 위반 혐의를 적용했다. 이는 법원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경원 기자 neosarim@kmib.co.kr, 사진=이병주 기자
‘난 몰랐다’식 담화… 朴 대통령 또 ‘가이드라인’ 논란
입력 2016-11-04 17:57 수정 2016-11-04 21: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