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 오후 7시(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 선거관리위원회 건물 1층에 마련된 조기투표소. 거리의 가로등이 환하게 켜져 어둠을 밀어내려는 순간 50대 중년 부부가 허둥지둥 달려와 투표소 문을 밀고 안으로 들어갔다. 투표소 문이 닫히기 10분 전까지 빌딩 바깥으로 길게 늘어선 대기행렬은 사라졌지만 빌딩 안에는 아직도 투표를 마치지 못한 유권자 120여명이 의자에 앉아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워싱턴DC에 마련된 조기투표소 9곳은 온종일 드나드는 투표자들로 붐볐다.
미 대선이 한치 앞을 내다보기 힘든 접전이 벌어지고 있는 가운데 조기투표자들이 크게 늘었다. 시카고트리뷴은 3510만명 이상의 유권자가 투표를 마쳤다고 보도했다. 이런 추세라면 오는 8일 선거일 전까지 4600만명 이상이 조기투표에 참여할 것이라는 게 AP통신의 예측이다. 올해 투표율이 2012년과 같다면 총투표의 40%가 조기투표에서 결정된다.
투표 당일 줄 서서 기다리는 불편을 덜어주고, 투표 참여율을 높이려는 취지로 도입된 조기투표는 올해의 경우 워싱턴DC와 37개주에서 시행되고 있다. 조기투표율은 1992년 7%에 불과했으나 2000년 16%, 2008년 30% 등 갈수록 가파르게 늘었다. 조기투표 참여기간은 지역마다 다르다. 워싱턴DC는 조기투표를 4일 마감하지만, 노스캐롤라이나에선 5일까지 이어진다.
조기투표율의 증가는 민주당 후보 힐러리 클린턴에게 유리할 것이라는 전망이 많지만 회의적인 분석도 만만치 않다. 클린턴에 유리하다고 보는 분석의 근거는 조기투표가 한창 진행 중이던 시기에 클린턴의 지지율이 공화당 후보 도널드 트럼프보다 높았다는 것이다. 이 시기에 조기투표를 한 사람들 중에는 클린턴에 표를 던진 사람이 많았을 것이라는 추론이다. 일부 경합주에서 여성과 히스패닉 유권자들이 눈에 띄게 증가한 것도 클린턴에게 유리한 요인으로 해석됐다.
그러나 조기투표 참가자들은 지지 후보를 일찌감치 정한 사람들이어서 일반적인 여론조사 지지율 추이에 영향을 받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는 반론도 있다. 실제 이날 조기투표소에서 만난 한 40대 백인남성 유권자는 “오늘 찍을 후보를 언제 결정했느냐”고 기자가 묻자 “1년 전”이라고 대답했다.
일부 지역에서 조기투표는 오히려 크게 줄어 클린턴 캠프에 비상이 걸렸다. 흑인 인구 비중이 높은 경합주 노스캐롤라이나에서 흑인들의 조기투표 참가율은 4년 전에 비해 16% 줄었다. 반면 백인의 사전 투표율은 15% 높아졌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나서서 조기투표 독려를 호소할 정도다.
후보들에 대한 비호감이 역대 최고 수준이다 보니 민주당과 공화당 유권자들 중 소속 정당 대선 후보를 찍지 않은 이탈자들이 생겨나는 것도 조기투표 결과를 예측하기 어렵게 하고 있다. 플로리다주에서 클린턴과 트럼프의 지지율은 이날 현재 동률(46.1%, RCP 기준)이지만 조기투표에 참여한 공화당 지지자 중 28%는 ‘대선후보만큼은 클린턴을 선택했다’는 설문조사(타깃스마트/윌리엄메리)도 있다.
조기투표율과 아울러 공화당 지지자들이 속속 집결하면서 백인의 전체 투표율이 높아질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공화당에선 폴 라이언 하원의장과 테드 크루즈 상원의원 등이 입장을 바꿔 다시 트럼프 지지를 선언하면서 트럼프에 대한 당내 지지율이 90%에 육박한 상태다. 공화당 지지자의 다수가 백인인 점을 감안하면 백인 투표율 증가로 이어질 수 있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민주당의 여론조사 전문가인 코넬 벨처는 정치전문 매체 더힐과 인터뷰에서 “백인 투표율이 4년 전에 비해 1∼2% 포인트 더 높은 73∼74%가 되면 트럼프가 당선되고, 71∼72%에 머문다면 클린턴이 당선될 것”이라고 예측하기도 했다.
워싱턴=전석운 특파원 swchun@kmib.co.kr, 그래픽=공희정 기자
[2016 미국의 선택] 조기투표율 높은데 흑인은 시들… 힐러리 캠프 ‘비상’
입력 2016-11-05 00: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