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야당은 국민을 믿고 대통령 만나 대화해보라

입력 2016-11-04 18:56
박근혜 대통령의 1차 사과 후 열흘간 끓어오른 여론은 세 가지로 압축된다. ①국민에게 진정한 사과를 하라. ②자청해 수사 받으라. ③국회 협조를 구해 국정 컨트롤타워를 세우고 대통령은 빠지라. 박 대통령은 2차 담화에서 ①과 ②를 ‘어느 정도’ 했다. 좋은 취지로 한 일이 잘못됐다는 식의 규정은 부적절했지만 “모두 제 잘못”이라 했고 특검 수사도 받겠다고 했다. 문제는 ③이었다. “여야 대표와 자주 소통하며 국회 요구를 더욱 무겁게 받아들이겠다”는 선에서 그쳤다. “나는 뒤로 빠지겠다”는 명시적 또는 암시적 발언이 없었다. 야당이 반발하면서 국정 수습의 단초가 되지 못할 가능성이 커졌다.

지금 우리는 온통 불확실성에 휩싸였다. 박 대통령이 당장 하야하는 게 맞는지, 점진적 퇴진과 조기 대선이 답인지, 2선에 물러나 임기를 채우게 해야 할지 판단이 서 있지 않다. 정치권에선 스펙트럼만큼 다양한 주장이 쏟아져 나온다. 그동안은 어처구니없는 사태의 진상을 밝혀야 했기에 강한 목소리, 큰 목소리가 필요했다. 마침내 헌정사상 최초로 현직 대통령이 검찰과 특검 수사를 받게 됐다. 진상규명을 위한 장치는 마련된 셈이다. 이제 불확실성을 차근차근 해소해나가야 한다. 분노한 민심을 대변하는 외침은 계속돼야 하지만, 불안한 민심에 방향을 제시하는 대화도 함께 이뤄져야 할 때가 왔다. 청와대와 국회가 이 대화에 나서지 못한다면 1차 책임은 여론을 충분히 반영 못한 대통령에게 있다. 하지만 야당도 불안한 민심을 헤아리지 못했다는 책임에서 자유롭기 어렵다.

더불어민주당이 내건 영수회담 전제조건은 “항복하라. 그러면 대화하겠다”는 뜻이다. 대화를 통해 항복을 받아내는 방법도 분명히 있다. 살아있는 국회 권력이 지혜를 모아 합리적 로드맵을 제시하면 지지율 5% 대통령이 거부할 수 있겠는가. 거부할 경우 국민이 가만히 있겠는가. 야당이 국민을 믿는다면 대화하지 못할 이유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