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대통령 담화에 권한 내려놓는 방안이 빠졌다

입력 2016-11-04 18:57
대한민국이 68년 헌정 사상 처음으로 현직 대통령이 검찰 조사를 받는 참담한 상황을 맞게 됐다. 박근혜 대통령은 4일 청와대에서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과 관련한 대국민 담화를 발표하고 “필요하다면 저 역시 검찰의 조사에 성실하게 임할 각오이며 특별검사에 의한 수사까지도 수용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어느 누구라도 수사를 통해 잘못이 드러나면 그에 상응하는 책임을 져야 할 것이며 저 역시도 모든 책임을 질 각오가 되어 있다”고 말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2008년 2월 취임 직전 BBK 사건으로 특검의 조사를 받았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2009년 4월 ‘박연차 게이트’로 대검찰청에 출두한 적은 있지만, 현직 대통령이 검찰 조사를 받은 경우는 없었다. 초유의 최순실 사태가 이 나라를 송두리째 흔들고 있는 것이다. 검찰은 대통령이 조사를 받겠다고 나선 만큼 머뭇거리지 말고 곧바로 관련 절차에 착수해야 한다. 서면과 같은 형식적 조사는 배제하는 게 맞다.

사과 진정성에도 국민 요구에는 부족

아울러 박 대통령은 담화에서 “이 모든 사태는 모두 저의 잘못”이라며 “국민 여러분께 용서를 구한다”고 고개를 숙였다. “내가 이러려고 대통령을 했나 하는 자괴감이 들 정도로 괴롭기만 하다”는 대목 등에서 몇 차례 울먹이기도 했다. 지난달 25일 100초짜리 대국민 사과와 비교하면 두 번째 사과에는 진정성이 담겨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그러나 이번 담화는 하야와 탄핵 주장으로 분출되고 있는 민심을 수습하기에는 부족해 보인다. 대통령이 국민들로부터 신뢰를 완전 상실했음을 보여주는 여론조사도 이날 발표됐다. 한국갤럽은 박 대통령의 지지율이 역대 대통령 중 최저인 5%로 조사됐다고 밝혔다. IMF 외환위기를 맞았던 김영삼 대통령의 집권 5년차 4분기 지지율 6%보다도 낮은 수치다. 이런 국정 지지도로는 정상적인 통치를 할 수 없다. 김영삼 대통령 때는 김대중 대통령으로 권력이 넘어가는 이양기여서 국정 공백이 작았다. 하지만 지금은 박 대통령 임기가 1년4개월이나 남아 있고 차기 권력의 향배도 정해지지 않았다.

여론조사에서도 입증됐듯이 국민들 가슴속에는 이번 사태가 ‘최순실 게이트’를 넘어서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이미 자리 잡았다. 박 대통령이 대기업들의 미르·K스포츠재단 기금 출연에 직접 관여했다는 정황이 구체적으로 나오고 있고, 구속된 최씨의 국정 개입도 전방위적으로 이뤄졌음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따라서 대통령은 국민적 분노가 갈수록 커지고 있는 것을 알았다면 국정을 조기에 정상화시킬 수 있는 특단의 대책을 내놨어야 했다. 그러나 정치권은 물론 국민들이 요구하는 핵심, 즉 권위와 신뢰를 잃은 대통령이 갖고 있는 제왕적 권력을 어떻게 내려놓을지가 담화에 빠져 있다. 국정의 2선으로 물러나 있으라는 목소리가 곳곳에서 분출하고 있는데 오히려 대통령은 “국정은 한시라도 중단돼서는 안 된다”며 손에서 놓지 않겠다는 의지를 엿보였다.

조사 수용 외 국정 중심에서 물러나길

이런 비판에 청와대는 김병준 국무총리 후보자의 지난 3일 기자간담회에 관련 내용이 들어 있다고 해명했다. 박 대통령이 김 후보자와 충분히 협의해서 장관 임명과 해임 권한을 줬고, 김 후보자가 책임총리로서의 의지를 표명했다는 것이다. 이 말이 맞는다면 대통령은 전 국민이 지켜보는 가운데 “앞으로 국정의 중심은 내가 아니라 총리”라고 분명하게 선언했어야 했다. 우리나라는 명백한 대통령 중심제 국가다. 헌법에도 없는 책임총리가 그 권한을 사용하려 해도 대통령이 거부하면 무용지물인데, 두 사람이 밀실에서 협의해서 주고받았다고 하면 곧이곧대로 믿을 국민이 몇이나 되겠는가.

사태의 책임을 통감했다면 담화에는 국민적 요구에 부응하는 수습 방안이 담겼어야 했다. 박 대통령의 표현대로 대통령의 임기는 유한하지만 대한민국은 영원히 계속돼야 한다. 더 이상 국가가 흔들려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