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영훈의 컬처 토크] 손석희와 마르틴 루터

입력 2016-11-04 20:39

지난 10월 24일 JTBC의 ‘뉴스룸’ 보도는 ‘최순실 사태’의 민낯을 낱낱이 드러내며 전 국민을 충격에 빠뜨렸다. 그리고 열흘의 시간이 흘렀고 지금 대한민국은 혼돈에 빠졌다. 이 기간 JTBC ‘뉴스룸’의 시청률은 동 시간대 공중파 뉴스의 두 배 이상을 상회하며 엄청난 파장을 불러 일으켰다. 이번 특종은 단지 우발적 결과물이 아니다. 지난 몇 년간, 특히 세월호 사건을 다루며 JTBC 뉴스팀은 치열한 탐사보도의 과정들을 보여준 바 있다.

그 중심에 손석희가 있다. 그가 MBC를 떠나 보수 재벌 언론사로 이적했을 때 사람들은 많은 실망감을 표명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후 손석희는 언론통제로 인해 정상적인 기능을 상실한 공영방송을 대치하며 품격 있고 신뢰받는 뉴스 프로그램을 만들어 냈다. 그가 10월 24일 특종 보도 후 직원들에게 보낸 편지가 화제다. “겸손하고 자중하고 또 겸손하고 자중합시다… 우리는 본의 아니게 사람들에게 치유하기 어려운 상실감을 던져주고 있기도 합니다. 그러니 우리의 태도는 너무도 중요합니다.” 놀랍도록 침착하고 정교한 그의 언론정신과 보도방식은 분명 아프지만 지금 이 순간을 대한민국 언론사의 중요한 시점으로 기억하게 할 것이다.

1517년 10월 31일 독일 비텐베르크 대학의 한 신학교수는 성 베드로 성당의 완공을 위해 면죄부를 판매한 교황청에 맞서 용감한 결단을 실행한다. 마르틴 루터가 ‘95개조 반박문’을 내걸었을 때, 그는 이 행동이 이후 어떤 결과를 불러오리라 예견할 수 있었을까. 하지만 직전 세기의 발명된 금속활자(1425)를 통한 미디어 혁명은 95개조 반박문이 급속도로 확산되게 만들었고, 그렇게 종교개혁의 위대한 혁명은 시작되었다.

청와대 비선 실세에 대한 소문처럼, 당대 타락한 교회에 대한 의문은 이미 오래전부터 지식인들 사이에 심각하게 제기되어 왔다. 하지만 그들은 용감하고 정교하게 대응하지 못했다. 에라스무스가 ‘우신예찬’(1511)을 통해 당대의 교회와 권력자들을 향해 풍자적인 비판을 한 것이 그나마 기세등등한 권력 앞에 양심적 지식인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이었을 것이다.

95개조 반박문을 읽어보면 그가 얼마나 성서에 대한 깊은 지식에 근거해 교회 권력의 오류를 조목조목 날카롭게 비판하는지 간담이 서릴 정도이다. 그 중 50번째 항목을 보자. “들으라, 교황은 당신의 면죄부를 통해, 양의(가난한 성도들의) 가죽과 살과 뼈로 성 베드로 성당이 지어진다면 차라리 그것을 불태워 재로 만드는 게 나을 것이다.” 그는 반박문을 통해 단지 교회 기득권에 대한 비판을 넘어, 일반 신자들의 무지를 책망하고, 참된 신앙과 구원에 대한 신자들의 올바른 경건을 촉구하였다. 루터는 분명 당대 교권과 그리스도인들을 향해 날카로운 혜안을 전달한 참된 언론인이었다.

지난 몇 년간 손석희는 뉴스를 진행하며 시청자들에게 지속적으로 이렇게 물었다. “지금 우리에게 국가란 무엇인가” 1517년 루터의 질문 역시 그 핵심은 ‘교회란 무엇인가’에 있다. 베드로전서 2장 9절에 근거해 그가 주장한 교회는 신의 대행자로 자처한 교권이 아니라 바로 주 앞에 서있는 모든 신자들이다.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아, 혼란스러운 현 시점에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루터의 이 질문에 책임 있는 응답을 해야 할 것이다.

윤영훈 <빅퍼즐문화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