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거수일투족이 조심스러워지는 것 같아요.”
서울 서대문구 명지2길 명지고 김종화 교목은 일명 ‘김영란법’ 시행 이후 신경이 바짝 곤두서 있다. 정기적으로 모이는 학부모기도회부터 학부모 상담, 교내 추수감사예배에 이르기까지 행여 법 위반 소지는 없는지 국민권익위와 변호사 등을 통해 한 달 넘게 이런저런 문의를 이어오고 있다.
김 교목은 3일 “학부모들이 학교에 드나들 수 밖에 없는 환경과 예배 때 드리는 헌금 부분 등에 있어서 학교 측에서는 김영란법 시행 이후 민감해하는 편”이라며 “법 시행 초기라서 교목실 입장에서는 더 많은 관심을 가질 수 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김영란법이 시행된 지 한달을 넘어가면서 교계 일상에도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부정청탁과 금품수수 등에 대해 엄격한 지침을 두고 있는 법 특성상 불미스러운 일을 사전에 차단하겠다는 의지와 분위기가 엿보인다.
“김영란법으로 인해 앞으로 국회 안의 공간을 예배실로 빌려 사용하기가 어려워졌습니다. 예배 공간 확보를 위해 함께 기도해주세요.”
지난달 18일 오전 국회 헌정기념관 대강당. 새누리당기독인회 월례기도회를 마치면서 기독인회 회장 이혜훈 의원이 참석자들에게 공지했다. 이유는 이렇다. 김영란법에서는 부정청탁 여부를 가리는 기준 가운데 하나로 ‘정상적인 거래 관행을 벗어날 경우’를 꼽고 있는데, 국회사무처 내규에는 ‘국회 내 공간은 국회의원이 의정 활동을 위해 대여할 수 있다’라고 명시돼 있기 때문이다.
새누리당기독인회 관계자는 “그동안 기독 의원들에게 알음알음 부탁해서 열리던 국회내 교계 행사가 1년에만 수십 건에 달했다”면서 “이제부터는 어려워지지 않겠느냐”라고 내다봤다.
지난 1일 음악회를 치른 A교회. 김영란법이 행사의 상당 부분을 바꿔 놨다. 12만∼15만원씩 하던 티켓 가격을 일괄적으로 1만원에 맞춰야 했고, 통상 1인당 4만∼5만원에 달하는 만찬은 물론 다과회까지 생략했다. 출연진의 출연료는 김영란법에 명시된 대로 지급토록 행사를 맡긴 이벤트업체에 신신당부하면서 ‘김영란법을 반드시 준수해야 한다’는 조항을 계약서에 별도로 기재했다.
행사 실무를 담당한 A교회 장로는 “김영란법 때문에 까다로운 부분은 다소 있었지만 비용 면에서는 당초 예상보다 20% 가까이 줄었다”면서 “교회 입장에서는 김영란법이 고맙다”고 귀띔했다. 주요 교단과 대형교회, 기독교 단체 등의 홍보 담당자들 사이에서도 김 장로와 비슷한 경험담을 꺼내는 이들이 적지 않다.
교계 언론사 등에서는 김영란법 배우기가 이어지고 있다. 4일 17개 회원사를 둔 한국크리스천기자협회는 첫 번째 김영란법 설명회를 갖는다. 앞서 주요 기독 언론사들과 신학대 교직원들도 관련 특강을 개최했다. 기독교윤리실천운동 박제민 팀장은 “법 준수를 위해 힘쓰는 교계의 노력은 긍정적”이라며 “나아가 건강한 사회문화를 조성하는데 앞장서는 본을 보여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글=박재찬 기자 jeep@kmib.co.kr, 삽화=이영은 기자
국회내에서 교계행사 개최 어려워져… 티켓 값 내리고 만찬 등 행사비 줄어
입력 2016-11-03 20: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