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1분40초짜리 사과문을 읽은 뒤 열흘이 지났다. 그동안 국민은 박 대통령에게 아무 말도 듣지 못했다. 그 짧은 사과에 용인될 사태가 결코 아닌 것으로 드러났고, 최순실 안종범씨는 구치소에 수감됐다. 하야 주장마저 공공연해졌는데 대통령은 여전히 말을 하지 않고 있다. 대신 행동을 했다. 갑작스레 새 총리를 지명하고 장관을 바꿨다. 이튿날에는 대통령 비서실장과 정무수석을 전격 임명했다. 말을 하지 않으니 짐작하건대 박 대통령은 방침을 정한 듯하다. 지난달 30일 김병준씨를 만나 총리직을 제안했다니까 그때 이미 갈 길을 결정했다는 얘기가 된다. 박 대통령이 말 대신 행동으로 보여준 방향은 “내가 수습하겠다”는 것이라고 해석할 수밖에 없다. 야당은 물론 여당도, 심지어 현직 총리와 청와대 수석도 모르는 상태에서 일련의 수순을 밟고 있다. 그것은 결코 뜻대로 되지 못할 것이다. “아직도 정신 못 차렸다”는 야당 대표의 지적은 틀리지 않는다.
10%도 안 되는 지지율, 계속 뜨거워지는 촛불시위와 시국선언, 온라인의 풍자와 비아냥거림을 통해 국민이 느낀 배신감은 지난 열흘간 청와대에 충분히 전달됐다. 박 대통령은 “내가 하겠다”는 의지가 아니라 “나는 빠지겠다”는 결단을 보여야 할 시점에 왔다. 과감히 꺼냈던 개헌 카드가 아무런 힘을 발휘하지 못했듯 그 결정이 설령 옳은 방향이라 해도 박 대통령이 결정했다는 이유로 국민에게 거부당할 수 있게 됐다. 국민이 위임한 권한을 다른 사람에게 주지 않았나. 뭔가 해낼 힘이 더 이상 남아 있지 않다는 걸 인정해야 한다. 그래야 파국을 막을 수 있다. 우리 국민은 부당한 정권에 맞서 광장에 섰던 기억을 갖고 있다. 그 광장이 다시 열린다면 대통령은 물론이고 국민에게도 불행한 일이다. 박 대통령의 ‘퇴장’은 최대한 질서 있게 이뤄져야 하며, 이는 퇴장의 절차를 마련하는 과정에서 박 대통령이 최대한 빠져야 가능하다. 4년간 해왔던 불통의 방식은 결코 질서를 보장할 수 없다.
국민은 분노했고 또 불안하다. 불확실한 상황이 길어질수록 불안감은 증폭되고 이는 더 큰 분노로 바뀔 것이다. 이런 국민에게 아무 설명도 없이 대통령이 결정한 방향을 수용해 달라고 하는 건 무례하다. 미르·K스포츠 재단의 모금 과정을 비롯해 박 대통령이 직접 해명하고 책임져야 할 부분이 잇따라 드러나고 있다. 지금 해야 할 일은 먼저 국민에게 소상히 밝히고 사죄하는 것, 국정을 이어갈 컨트롤타워가 구축되도록 반대에 부닥친 개각을 철회하고 야당에 협조를 구하는 것, 그리고 국정농단의 실체적 규명을 위해 검찰 수사를 받는 것이다. 박 대통령의 상황 인식은 국민과 너무 동떨어져 있다. 이 세 가지를 제외한 정치적 행위는 사실상 불가능해졌음을 어서 깨달아야 한다.
[사설] 개각 철회하고 야당에 협조 구하라
입력 2016-11-03 17: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