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L ‘최악 저주’ 두 개 푼 ‘청부사’ 엡스타인

입력 2016-11-03 19:10
테오 엡스타인 시카고 컵스 사장이 월드시리즈 우승을 확정지은 뒤 트로피를 머리에 올린 채 환하게 웃고 있다. AP뉴시스

108년만의 시카고 컵스 월드시리즈 우승을 논할 때 절대 빼놓을 수 없는 남자가 있다. 테오 엡스타인(43) 야구부문 사장겸 단장은 이번 우승으로 메이저리그(MLB) 최악의 저주를 두 번이나 깬 사나이가 됐다. 불혹의 우승 청부사는 수년간의 치밀한 준비와 노력 끝에 야구인생의 최대 황금기를 맞이했다.

엡스타인이 처음 저주와 마주한 건 2002년 보스턴 레드삭스 단장으로 부임하면서다. 29살의 어린 나이에 메이저리그 최연소 단장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거대한 야구단 운영에 나섰다.

보스턴은 엡스타인이 부임한 지 2년 만인 2004년 86년 동안이나 이어져 왔던 ‘밤비노의 저주’에 마침표를 찍었다. 그가 일군 우승은 우연이 아니었다. 2007년에도 한 차례 더 보스턴을 메이저리그 최정상으로 이끌었다.

비결은 언제나 그랬듯 크게 다르지 않았다. 유망주를 하위리그에서 길러낸 뒤 되팔거나, 팀에 필요한 선수를 영입해 적재적소에 투입하는 방식이었다. 목표는 단 하나, 월드시리즈 우승이다. 그는 팀의 우승을 위해서라면 아무리 인기가 많은 스타선수라도 가차없이 내치는 일을 마다하지 않았다.

2011년 컵스로 자리를 옮긴 그는 본격적으로 ‘염소의 저주’ 깨기 프로젝트에 돌입했다. 부임전까지 ‘동네 북’ 취급이나 받으며 형편없는 야구를 하던 컵스는 급격히 변모했다. 엡스타인이 앞장서서 진행한 주도면밀한 운영과 코칭스태프의 헌신적인 지도로 강팀 대열에 올라선 것이다.

컵스는 크리스 브라이언트 같은 최고 유망주들을 직접 육성하면서도 반드시 필요한 자유계약선수(FA)는 모조리 영입했다. 월드시리즈에서 찰떡같은 배터리 호흡을 자랑한 투수 존 레스터와 포수 데이빗 로스는 물론이고, 존 래키와 제이슨 헤이워드도 엡스타인의 부름에 컵스 유니폼을 입었다. 월드시리즈 최우수선수(MVP)에 선정된 벤 조브리스트도 마찬가지다. 우승을 위한 마지막 퍼즐 조각 하나는 특급 마무리 투수 아롤디스 채프먼이었다. 엡스타인 단장은 월드시리즈 우승이라는 큰 그림을 완성하고자 그 어떠한 투자도 아끼지 않았다.

올 시즌 컵스는 누가 뭐래도 최고의 팀이었다. 정규시즌 동안 103승이라는 최고의 성적으로 내셔널리그 중부지구 우승을 차지했다. 2년 연속 가을야구도 이어갔다. 과거에는 디비전시리즈, 챔피언십시리즈에서 번번히 탈락해 월드시리즈에 진출하지 못했으나, 올해는 달랐다. 컵스는 71년 만에 월드시리즈의 문턱을 넘었고, 내친 김에 월드시리즈 우승컵까지 들어올렸다.

밤비노의 저주와 염소의 저주를 모두 깬 엡스타인은 전 세계 스포츠계와 팬들에게 자신의 진가를 제대로 보여줬다. 그는 지난 9월 컵스와 5년 연장 계약을 맺어 2021년까지 컵스의 운영을 도맡는다. 젊은 실력파 선수들을 다수 보유한 엡스타인은 이번 우승에 결코 만족할 인물이 아니다. 더 많은 우승에 목말라할 게 분명하다. 박구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