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장 10회, 108년 저주가 풀렸다… 컵스, 클리블랜드 꺾고 ‘우승 반지’

입력 2016-11-03 19:09
시카고 컵스 선수들이 3일(한국시간) 미국 오하이오주 클리블랜드 프로그레시브필드에서 열린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와의 월드시리즈(7전4승제) 7차전에서 연장 10회초에 터진 벤 조브리스트의 결승타에 힘입어 8대 7로 승리를 거둔 뒤 기뻐하고 있다. AP뉴시스

메이저리그에서 가장 오랫동안 우승을 하지 못한 팀. 시카고 컵스가 불운의 역사에 마침표를 찍고 드디어 월드시리즈 최정상에 올랐다. 1908년 이후 월드시리즈 우승의 기쁨을 맛보기까지 무려 108년. 한 세기가 넘는 시간이 흘렀다.

‘염소의 저주’, 선(先)3패의 저주, 100승 징크스도 우승반지를 끼겠다는 일념 하나로 똘똘 뭉친 컵스 선수단의 의지를 꺾지 못했다. 전 세계인이 지켜보는 앞에서 당당히 ‘저주 시리즈’를 따내고 자신들의 새 시대가 도래했음을 알렸다.

염소의 저주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끈질겼다. 이전 월드시리즈 경기를 지켜본 생존자가 몇 안 될 정도로 강력했다. 1945년 내려진 이 저주는 한 세기가 넘도록 컵스를 괴롭혀 왔다. 당시 홈구장 리글리필드에서 열린 월드시리즈 4차전에 염소를 데리고 들어온 관객을 내쫓으면서 생긴 저주다. 염소를 끌고 온 관객이 “앞으로 월드시리즈에 오르지 못할 것”이라고 퍼부은 한마디에 컵스는 홀린 듯 번번이 우승 기회를 놓쳤다.

컵스의 이번 우승도 너무나 극적이었다. 하마터면 또 그 저주에 갇힐 뻔했다. 디비전시리즈에서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챔피언십 시리즈에서 LA 다저스를 차례로 제압하고 월드시리즈에 진출했다. 일단 염소의 저주는 깼는데, 완전한 이별을 고하려면 월드시리즈 우승컵이 필요했다.

컵스는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와 벌인 월드시리즈에서 4차전까지 패색이 짙었다. 시리즈 전적 1승 3패로 뒤져 한때 벼랑 끝 위기에 몰리기도 했다. 7전 4선승제의 월드시리즈에서 먼저 3패를 거둔 팀이 나머지 경기를 모두 이기고 역전 우승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컵스는 기적과 같은 힘을 발휘했다. 5, 6차전을 잡고 승부를 원점으로 돌리더니 최종 7차전에서 클리블랜드를 연장 10회말 접전 끝에 8대 7로 잡고 기어코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이 마저도 쉽지 않았다. 컵스 마무리투수 아롤디스 채프먼은 6-3으로 앞선 8회 동점 홈런 포함 3점을 내줬다. 채프먼은 컵스가 이번 우승을 위해 영입한 핵심 선수 중 하나다. 그토록 믿었던 채프먼이 가장 중요한 순간에 위기를 자초했다. 결국 우승의 길을 코앞에 두고 옆길로 돌아간 셈이 됐다.

정규이닝 안에 승부가 가려지지 않았다. 이날 경기 연장 10회초를 앞둔 3일 클리블랜드의 홈구장 프로그레시브 필드에는 꽤나 굵은 빗방울이 뿌려졌다. 경기는 20여 분간 중단됐다가 재개됐다.

시리즈 막판 침묵했던 중심타선이 부활했던 것처럼 이날도 해결사가 나타났다. 바로 5번 타자 벤 조브리스트다. 그는 월드시리즈 7경기에서 타율 0.357 28타수 10안타 2타점을 기록했다. 그런데 월드시리즈 7차전에서는 짓누르는 압박감 때문인지 정규이닝 동안 단 한 개의 안타도 때려내지 못했다. 하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제 실력을 발휘했다.

연장 10회초 선두타자 카일 슈와버가 우전안타를 때려냈다. 이어진 1사 1, 2루 기회에서 조브리스트의 차례가 왔다. 그는 정규이닝 동안 지켰던 무안타의 침묵을 좌전 적시타로 깨버렸다. 컵스는 조브리스트의 천금같은 한 방에 다시 앞서나갔고, 결국 승리를 지켜냈다.

조브리스트는 이 결승타로 2016 월드시리즈 최우수선수(MVP)의 영예를 안았다. 그는 메이저리그 공식홈페이지 MLB닷컴과의 인터뷰에서 “믿을 수 없이 기쁘다. 어떤 말로도 설명할 수가 없다. 컵스는 오랜 시간과 싸웠고, 우리는 최고의 팀이라는 믿음이 있었다”고 우승 소감을 밝혔다.

컵스는 108년 만에 우승 반지를 꼈고, 클리블랜드는 68년 만의 우승 기회를 놓쳤다. 이번 월드시리즈는 합쳐서 174년 동안 우승 가뭄을 겪던 두 팀의 맞대결이었다. 클리블랜드는 3승을 선점해놓고도 ‘와후추장의 저주’와 작별하지 못했다.

그래도 두 팀의 승부는 역사에 남을 만한 명승부였다. 도망과 추격, 연장전 돌입, 우천 지연, 그리고 컵스의 극적인 시리즈 역전 우승까지 야구가 가진 묘미를 모두 보여준 시리즈였다.

박구인 기자 capta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