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만사-하윤해] 김병준 총리 내정자에게

입력 2016-11-03 19:06 수정 2016-11-03 21:27

김병준 국무총리 내정자의 인사를 놓고 정치권 논란이 뜨겁다. 지명 철회를 요구하는 목소리는 여전히 크다. 타깃은 김 내정자라기보다 박근혜 대통령이다. 야당은 사실상 정치적 탄핵 상태인 박 대통령이 총리를 지명할 때 여야와 협의할 것을 기대했다. 하지만 박 대통령은 그러지 않았다. “대통령이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다”는 격한 반응이 설득력을 얻는 이유다.

여당 기류는 복잡하다. 박 대통령이 야당과 협의를 거치지 않고 임명한 절차에 문제가 있기 때문에 김 내정자를 받아들이기 힘들다는 의견이 많다. 하지만 김 내정자의 기자회견이 진정성 있기 때문에 총리 인준 통과에 주력해야 한다는 주장도 고개를 들고 있다. 그가 문재인 전 대표를 비롯해 친노(친노무현) 세력과 멀어진 부분에 주목하며 여권의 ‘이이제이(以夷制夷)’ 전략에 말려들었다는 평가가 있다. 동정론도 만만치 않다. 새누리당 의원은 “박 대통령이 독선적으로 인선을 하면서 아까운 사람 한 명을 날릴까 걱정”이라고 토로했다.

기자 생활을 마치기 전, 언젠가는 김병준 총리 내정자에 대한 칼럼을 써야겠다는 생각을 내내 했다. 하지만 그날이 이렇게 빨리 올지 몰랐다. 기자는 10년 전 김 내정자의 ‘논문 표절 의혹 및 BK21 연구실적 중복기재’ 사실을 단독 보도했다. 김 내정자는 노무현정부의 교육부총리에서 낙마했다. 김 내정자는 3일 “논문 표절을 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기자는 그 기사의 팩트에 대해 단 한 줄도 양보할 생각이 없다. 김 내정자의 발언은 “학자적 자존심은 지키겠다”는 뜻으로 받아들인다. 국정마비 상태에서 총리직을 맡은 그에게 잘잘못을 따지자고 주장할 생각도 별로 없다. 팩트에 자신이 없어서가 아니다. 사실상 대통령이 정치적으로 탄핵받은 상황에서 그가 앞으로 해야 할 일이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언젠가 김 내정자를 만난다면 하고 싶었던 얘기를 지금 꺼내고자 한다.

논문 표절이 하나의 검증기준으로 정착됐지만 사회적 파장은 현저히 줄어들었다. 잘못된 면역성이 생긴 것이다. 논문표절 의혹이 제기돼도 잠시만 손가락질을 견디면 장관이 되고, 국회의원이 되는 현실이 됐다. 학문윤리를 어긴 것에 대해선 사회적 처벌이 뒤따라야 한다. 하지만 김 내정자가 논문 관련 의혹의 첫 보도 대상이 됐기 때문에 마치 학문 윤리를 어긴 ‘대명사’처럼 치부되는 것이 안타까웠다. 그 대명사라는 ‘낙인’은 그에게 과도한 형벌이라고 생각한다. 누구나 사람은 실수와 잘못을 한다. 하지만 그런 일로 인생 전체가 매도돼서는 안 된다. 그보다 훨씬 더 큰 잘못을 의도적으로 저지른 사람들은 아직도 당당하게 살고 있기 때문이다.

김 내정자의 ‘99%를 위한 대통령은 없다’는 책을 다시 읽었다. 김 내정자는 ‘보수와 진보’ ‘좌와 우’로 갈라진 사회의 경직성과 폭력성을 우려했다. 또 우리의 정치체제와 행정체제는 여전히 ‘협치’보다는 ‘통치’를 위한 구조라고 지적했다.

그는 ‘깨어있는 시민’의 역할을 강조했다. 지금 ‘깨어있는 시민’들은 박 대통령의 독선적인 임명 방식에 큰 불만을 갖고 있다. 현재로선 김 내정자가 국회 인준을 통과하지 못할 가능성이 더 커 보인다. 그가 눈물까지 보였지만, 민심은 호락호락하지 않다. 김 내정자가 인생에서 두 번째 낙마를 겪을지도 모른다. 상황을 예측하기 힘들다. 다만 그가 총리를 하든, 못하든 보수와 진보의 경직성과 폭력성을 해결하기 위한 김 내정자의 노력이 꺾이지 않았으면 좋겠다.

하윤해 정치부 차장 justic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