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자선·비영리단체위’ 데이비드 로크 부위원장 “종교 자선단체는 단 한 번 잘못도 치명적”

입력 2016-11-03 21:18
데이비드 로크 호주 자선·비영리위원회 부위원장이 2일 한국의 자선·비영리단체를 대상으로 한 규제기구 설립의 필요성을 설명하고 있다.
“교회 등이 모태가 된 종교 법인에서 운영하는 자선 단체들은 재정 관리나 조직 운용 절차 등에 있어서 투명성이 보다 더 요구됩니다. 단체 특성상 어느 한 사람의 실수나 잘못으로 인한 타격이 치명적이기 때문이죠.”

호주 내 자선·비영리단체(NPO)들의 ‘판관 포청천’격인 데이비드 로크(50·변호사) 호주 자선·비영리단체위원회(ACNC) 부위원장의 조언이다. ACNC는 자선단체 및 비영리 단체의 규제 기관을 조사하는 한편 자선·비영리단체들을 대상으로 조언·지도 업무를 총괄하는 정부 기관이며, 로크 부위원장은 차관급 관료다.

최근 한국NPO공동회의 등의 주최로 서울에서 열린 ‘2016 국제기부문화 선진화 콘퍼런스’ 참석차 방한한 그를 2일 서울 프라자호텔에서 만났다.

로크 부위원장은 “호주 내에 있는 상당수 NPO는 기독교를 바탕으로 한 단체들”이라며 “전 세계적으로 ‘사랑’을 기치로 내건 기독교 단체들의 역할이 큰 만큼 책임 역시 가벼울 수 없다”고 설명했다. ACNC에 따르면 호주에는 올해 기준으로 총 5만4000개의 자선·비영리단체가 활동 중이며, 이 가운데 30%(1만6200개) 정도가 기독교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로크 부위원장은 “전 세계적으로 자선·비영리단체를 규제하기 위한 별도 기구들이 생기게 된 중요한 배경에는 교회 등 종교를 기반한 자선단체들의 ‘스캔들’ 영향이 크다”면서 이들 단체의 투명한 운영을 특별히 강조했다.

예를 들어 많은 성도들을 돌보면서 지역사회의 지도자로 인식되고 있는 목회자 등이 대표로 있는 자선 단체에서 공금 유용 등의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하게 되면 관련 활동을 지속하는 데 심각한 타격을 줄 수 있다는 얘기다.

로크 부위원장은 이런 극단적 사태를 막기 위해서는 NPO 규제기구 활동이 활성화돼야 한다고 주문했다. 현재 한국에서는 이 같은 규제 기구가 없는 상황이기 때문에 기독 비정부기구(NGO) 등의 자정 노력이 중요하다. 그는 “정기적인 회계 감사와 활동 보고는 물론이며, 기부·후원자들이 원할 때에는 언제든지 재정 보고서나 활동 내역 등을 공개할 수 있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건강한 자선단체를 키워내기 위해서는 기부·후원자들의 ‘발품 노력’도 중요하다. 로크 부위원장은 자선단체 가입 희망자들에게 “먼저 관심이 있는 단체의 운영 상황 등 자세한 정보를 들여다볼 것”을 주문했다. 관련 정보가 미비하다면 가입을 유보하는 게 낫다.

그는 또 “단체의 자선·구호 활동이 해당 분야에서 지금까지 어떠한 영향력을 끼쳐 왔는지 확인하고, 결심이 선다면 반드시 자선단체에 직접 전달하는 후원 방식을 취하라”고 조언했다. 로크 부위원장은 “영어로 자선단체를 뜻하는 ‘채러티(Charity)’는 고대 영어에서 ‘사랑’을 뜻한다”면서 “자선 활동이 더욱 확산되려면 사랑 실천이 제1덕목인 기독교 내부에서 공감대를 넓혀가고 자선을 실천하는 일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글·사진=박재찬 기자 jeep@kmib.co.kr, 그래픽= 이영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