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순실 파문의 끝은 어디인가? 대통령의 사과를 들으면서 과연 이게 나라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수준 이하의 인격을 가진 ‘강남의 웬 아줌마’가 국가 기밀에 해당하는 대통령 연설문을 받아 수정했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공화국의 주인은 국민이다. 권력의 주인은 국민이다. 그것을 대통령에게 위임한 것이다. 그 권력이 최순실 한 사람을 위해 쓰였다면, 그것은 공화국의 기초를 흔드는 중대 사안이라 할 수 있다.
권력의 부패에는 비리가 항상 뒤따른다. 그런데 최순실 파문에는 여기에 덧붙여 흉흉한 소문도 따라 다닌다. 내가 흉흉하다고 하는 말은 최순실이 대통령의 영혼을 지배하는 사이비 교주라는 말까지 항간에 떠돌기 때문이다. 이런 말을 대놓고 부인할 수 없는 것은 사이비 교주 최태민과 대통령과의 오랜 관계 때문일 것이다. 그 연장선에서 최순실이라는 인물이 탄생한 것이기도 하니까. 미대사관 비밀 문건에서 최태민을 ‘라스푸틴’이라 지칭한다. 라스푸틴이 누군가? 권력에 기생하여 부패를 저지르다 제정 러시아를 파멸로 이르게 한 괴승이다. 최순실 사건에도 라스푸틴의 긴 그림자가 느껴진다.
최순실 사태를 보면서 나는 권력과 종교에 대해 새삼 생각한다. 종교는 권력에 대해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하는가? 스코틀랜드 종교개혁가 존 녹스가 떠오른다. 존 녹스는 스코틀랜드 여왕 메리 스튜어트에게도 충언과 비판을 아끼지 않은 인물이었다. 메리 여왕은 국민의 저항으로 가톨릭 국가에서 개신교 국가가 된 스코틀랜드를 다시 가톨릭 국가로 만들고자 했다. 그리고 여왕은 펠리페 2세의 아들 환 칼로스와 결혼해 나라를 강력한 가톨릭 국가 스페인의 지배 하에 두고자 했다. 존 녹스는 국민의 뜻에 어긋난 것이라며 결혼에 극력 반대했다. 여왕은 울면서 존 녹스에게 항의했다. “당신이 도대체 뭐길래, 내 결혼을 방해하는가?”존 녹스가 대답했다. “저는 일개 신민이지만 국가가 위험에 처했을 때 그것을 경고하는 의무를 지니고 있습니다.”결국 결혼은 성사되지 않았다.
메리 여왕은 이후 사촌 단리 경과 결혼했다. 결혼했지만, 여러 남자와 추문을 일삼았다. 다른 남자의 아이도 낳았다. 종교개혁자들 뿐만 아니라 가톨릭교도들에게도 미움을 샀다. 그녀는 폐위되었고, 한 살을 갓 넘긴 어린 아들이 왕위에 올랐다. 메리는 폐위된 후에도 반동종교개혁을 계속해서 사주했다. 결국 영국여왕 엘리자베스 1세에게 붙잡혀 오랫동안 유폐생활을 하다가 처형을 당했다. 비참한 말로였다. 여왕이 존 녹스의 말을 들었더라면, 비참한 말로는 피하지 않았을까 싶다.
종교가 권력에 빌붙어 권세와 영화를 누리려 한다면, 이번 사태를 보면서 나는 그 꿈을 접으라고 말하고 싶다. 종교가 권력에 빌붙거나, 야합할 때 종교는 여지없이 타락하고, 나라는 망했다. 멀리 갈 것도 없이 고려가 그랬다. 기독교가 설 곳은 공의로우신 하나님의 편 밖에 없다. 하나님의 공의에 비추어 권력이 불의할 때 비판을 하고, 경각심을 일깨우는 것이 종교가 할 일이다.
그런데 이번 최순실 사태에서 기독교계가 보여 준 행동은 정말 실망스럽다. 대통령이 개헌이야기를 꺼내자마자, 동조하듯 한국기독교총연합회와 한국교회연합은 하루도 지나지 않아 대통령 지지 성명을 발표했다. 왜 대통령이 스스로 ‘블랙홀’이 될 것이라고 이야기했던 개헌을 갑자기 들고 나왔는가를 조금이라도 생각했어야 하지 않은가. 개헌은 정권 위기 모면 차원에서 언급될 사항이 아니다. 헌법은 그 나라의 정신이자, 근간이다. 그것을 정권 위기 모면용으로 사용해서는 안 될 일이다. 거기에 기독교가 부화뇌동한 꼴이 되었다. 대통령의 개헌 논의 발표 이후, 밤사이에 터진 최순실 사태로 교계기관의 개헌 찬성 주장은 물 건너 가 버린 것이 되어 버렸다. 기독교계는 머쓱한 지경을 넘어 최순실 사태에 대해 앞으로 말 한마디 하기 어려운 사항이 되었다. 최태민을 목사라 부르지 말라고 하는 정도이니, 이것이 지금 국가의 위기와 국민의 참담함에 기독교계가 내놓을 메시지인가.
기독교인은 항상 하나님의 공의가 어떤 것인지 생각하고 행동해야 한다. 하나님의 공의를 생각하지 않는다면, 기독교인은 더 이상 기독교인이 아니다. 세속의 권력을 탐했던 교황을 비판하고 성서에 나온 대로 하나님의 공의로 돌아가고자 했던 것이 종교개혁의 정신이다. 하나님의 공의는 권력보다 위이다. 하나님의 공의에 서있을 것인가, 아니면 권력자의 편에 서있을 것인가 묻는다면, 기독교인이 설 곳은 하나 밖에 없다. 하나님의 공의이다. 권력은 유한하지만, 하나님의 의는 영원하다.
이동희 <한국학중앙연구원 책임연구원>, 정리=유영대 기자
[이동희의 종교개혁 500년] 공의 그리고 메리 여왕의 말로
입력 2016-11-04 20: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