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 베어스가 프로야구 한국시리즈 2연패를 확정한 지난 2일 경남 창원 마산구장. 경기 시작을 2시간 앞두고 더그아웃으로 몰린 기자들 사이에서 한바탕 웃음이 터졌다. 두산의 김태형(49·사진) 감독에게 여러 질문들이 쏟아지는 과정에서였다.
질문은 대부분 전략에 관한 것들이었다. 7전 4선승제인 한국시리즈에서 이미 3승을 확보해 우승을 목전에 둔 김 감독의 결의와 구상은 당연히 초미의 관심사였다. 두 경기 연속 결승 홈런을 때린 4번 타자 김재환에게 무엇을 주문했는지, 실점 위기에서 선발투수 더스틴 니퍼트를 불펜으로 활용할 수도 있는지에 대한 질문들이었다.
김 감독은 그때마다 이렇게 한 마디씩 내뱉었다. “내 마음이죠. 뭘….” 기자들에게 포위를 당한 것처럼 둘러싸여 긴장감이 흐른 더그아웃의 분위기를 띄우기 위한 농담이었다. 김 감독은 기자들의 웃음소리를 확인한 뒤 대답을 이어갔다.
김 감독은 위트와 센스를 가진 지도자다. 기자들의 질문을 농담으로 받아치면서 그 안에 진심을 담기도 하고, 풀이 죽은 선수를 재치 있는 말로 격려하면서 우회적으로 자극한다. 그렇게 분위기를 장악한다. 위트와 센스를 활용한 분위기 장악력은 지도자의 전술이나 선수단의 전력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한국시리즈 우승의 복잡한 원인들을 한 곳으로 모으는 김 감독만의 노하우다.
선수들에게 김 감독은 전권을 쥔 지도자지만 한편으로는 선배다. 김 감독 역시 1990년 두산의 전신 OB에서 프로로 입문한 포수였다. 선수로 12년, 지도자로 12년, 그렇게 24년을 두산에서 보낸 ‘베어스맨’이다. 2001년을 마지막으로 은퇴하고 이듬해부터 두산의 배터리코치를 맡아 지도자로 전향했다. SK 와이번스 배터리코치를 3년간 지내고 지난해 다시 돌아온 그에게 두산이 제안한 역할은 사령탑이었다.
하지만 김 감독은 선수 시절을 잊지 않았다. 선수들의 개인 일상에 깊이 간섭하지 않는다. 승부조작 불법도박 음주운전 폭행 등 프로야구에서 사건사고들이 하루를 멀다 하고 불거졌지만, 김 감독은 “장외에서는 풀어주고, 장내에서만 통제한다”는 원칙을 세웠다. 방만해지도록 내버려두는 것은 아니다. 선수단의 분위기를 해칠 정도로 자유분방한 선수는 과감하게 포기한다. 프로의 세계에서 냉혹하지만 한편으로는 당연한 이치다. 두산은 여러 사건사고들로 얼룩졌던 과거와 다르게 지난해부터 장외 논란거리가 사라졌다. 김 감독이 부임한 뒤부터다.
필요할 땐 카리스마를 발휘한다. OB 주장이던 1998년 최우수선수(MVP) 상금을 동료들과 배분하기로 한 선수단의 합의를 무시하고 분위기를 험악하게 만든 당시 외국인선수 타이론 우즈를 라커룸으로 끌고 가 혼을 내고, 지난해 7월 경기 중 땅볼을 치고 1루까지 불성실하게 걸어간 김재호를 더그아웃에서 꾸짖은 일화는 유명하다. 김 감독은 적어도 유니폼을 입은 순간만큼은 개인의 지론보다 팀워크를 중요하게 여긴다. 그러나 경기를 시작하면 말을 아낀다. 더그아웃에서 사소한 작전지시를 내리는 것보다 전술의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은 선수들의 창의적인 플레이를 선호한다. 김 감독은 ‘보스(Boss)’보다 ‘리더(Leader)’에 가깝다.
자유와 방만을 구분하고, 통제를 빌미로 선수를 혹사하지 않는 김 감독의 리더십. 바로 ‘형님 리더십’이다. 선수단을 통제하지 못해 시즌 내내 구설수에 시달린 NC 다이노스의 김경문 감독, 같은 이유로 최하위권으로 추락한 삼성 라이온즈의 류중일 감독, 혹사 논란이 끊이지 않는 한화 이글스의 김성근 감독과 대조되는 덕목이다.
프로야구 사상 정규리그 최다승(93승), 팀 사상 첫 한국시리즈 2연패를 일군 ‘두산 왕조’의 출범은 지도자가 선수에게 희생만 강요하고, 선수가 어렵게 쌓은 명성을 남용해 추락하기를 반복한 ‘옛날 야구’와의 작별이다.
글=김철오 기자 kcopd@kmib.co.kr, 일러스트=이은지 기자
‘兄 같은 리더’ 김태형 두산 베어스 감독, 보스 시대에 작별을 고하다
입력 2016-11-03 18: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