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블시론-지형은] ‘기도할 때’라는 뜻

입력 2016-11-03 17:25

걷잡을 수 없이 확대되고 꼬이는 최순실 사태가 어떤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단순하게 해결되지는 않을 것이다. 이 사태에 연루돼 있는 이들에게는 생사가 걸린 문제다. 권력에 붙어 국정을 농단하고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법을 유린하며 축재한 사람들이 순순히 물러나지 않을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최순실의 갑작스러운 귀국, 귀국 후 31시간의 자유시간, 예상치 못한 총리 지명 등을 보면서 최순실 편 어디에서 이 모든 것을 기획하고 조정하는 이가 있다는 의구심이 일고 있다. 증거인멸과 회유, 협박에 대한 구체적 증거들은 언론 보도를 통해 이미 확인된 터다. 검찰과 청와대를 비롯해 정부기관들에 우병우나 최순실의 사람들이 포진해 있다는 것도 알려진 일이다. 혐의 사실에 대한 공적인 조사와 확인, 기소와 처벌의 법적 절차를 쥐고 있는 검찰에 대한 신뢰가 의문시되고 있다.

이 사태에 대한 국민의 심판은 이미 끝났다. 10% 아래로 떨어진 대통령 지지율을 보라. 대통령이 직무를 더 이상 수행할 수 없는 상황이다. 보수나 진보, 지역이나 여야 성향, 계층이나 연령대를 막론하고 대통령에 대한 실망과 분노와 모멸감에 떨고 있다. 공분(公憤)이다. 그렇지 않아도 악화되는 상황이 대통령의 처신 때문에 최악으로 치닫고 있다. 대통령의 녹화 사과 방송이 그렇고, 독단적인 총리 내정이 그렇다. 대학을 비롯해 각계각층에서 전국적으로 대통령 하야 요구가 커지고 있다.

이런 와중에 기독교인들에게 ‘지금이 참으로 비상하게 기도할 때’라는 생각이 많다. 당연하고 마땅하다. 기도는 기독교 신앙의 심장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지금이 기도만 할 때인가’라는 반론도 크다. 나라가 이 모양 이 꼴인데 앉아서 기도만 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것이다. 기도와 행동이 충돌하는 양상이다.

이른바 보수 복음주의 신앙을 가진 사람들이 사회·정치적인 행동은 신앙적으로 올바르지 않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산상설교에 나오는, 비판하지 말라는 예수님 말씀을 들어 사회적인 비판을 꺼리는 모습을 보인다. 일을 해결할 때 인위적인 수단을 최소화하고 오로지 하나님 손에 맡기는 것이 깊은 신앙의 자세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성경은 기도와 행동을 상충하는 것으로 가르치지 않는다. 기도의 본령은 진실한 마음과 순종의 결단이다. 기도하는 사람이 기도의 자리에서 일어날 때부터 행동이 시작된다. 적어도 지금의 한국사회에서 이 점이 참 중요하고 절실하다. 어느 신앙인이 진실하게 기도한다면 기도 중에 만나는 하나님의 뜻에 순종해야 한다. 예컨대 청와대나 문체부에 있는 어떤 신앙인이 기도한다면, 그리고 그가 최순실 사태와 연관되어 법을 어겼다면 그 사람은 기도의 자리에서 하나님에게 책망을 받을 것이다. 그 기도가 빈말이나 무당의 주문이 아니라면 기도의 자리에서 일어나 자신이 저지른 일이나 알고 있는 일에 대해 정직해야 마땅하다.

기독교 역사에서 하나님의 뜻에 가장 철저하게 순종하는 신앙 유형이 수도원운동이다. 수도사들은 평생 말씀과 기도에 헌신하면서 거기에서 깨닫는 하나님의 뜻에 목숨을 건다. 그게 순명(殉命)이다. 그런데 수도원운동의 가르침에서 기도와 늘 짝을 이루는 것이 노동이다. 노동은 실천과 행동, 결단과 변화를 대표한다.

기도는 인식을 바꾸고 말과 행동에 영향을 끼친다. 행동에 아무런 영향도 주지 않는 기도는 성경에서 가르치는 기도가 아니다. 무당의 주문이며 종교적인 자기최면일 뿐이다.

그렇다. 지금이 기도할 때다. 기도와 행동이 하나인 그 기도 말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삶에서 마지막 장면이 기도와 행동이었다. 겟세마네의 기도, 십자가를 지신 행동! 우리 주님의 가르침이 기도와 행동, 기도와 삶이다.

지형은 성락성결교회 담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