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부희령] 유행과 취향

입력 2016-11-03 17:26

시골에 살 때는 옷차림에 신경을 쓰지 않아서 좋았다. 무릎 나온 운동복 바지, 낡은 티셔츠 그리고 뙤약볕을 가리기 위한 야구 모자만으로 지냈다. 이따금 서울에 올라올 일이 있으면 가장 좋은 옷을 차려 입었다. 그래도 청량리역에 내리면 아차, 싶을 때가 많았다. 신발에서부터 가방에 이르기까지 아무리 신경을 써도 도시 사람과 촌사람은 차이가 났다. 도시에는 백화점과 옷가게들도 많고, 물건이 흔하고 다양할 뿐 아니라 정보도 빨라서 유행이 급속히 바뀌는 것 같았다.

생각해 보면 세상에 유행이라는 게 있다는 것도 흥미롭다. 사람들이 일정한 시기에 비슷한 옷을 입고 다닐 뿐 아니라 공유하는 스타일에서 벗어나면 눈치가 보이고 심하면 소외감을 느끼기까지 하니까.

나는 경제적 능력도 없지만 색채나 조형 감각도 달려서 여전히 대충 편하게 옷을 입고 다니는 편이다. 보다 못한 지인들이 나이 들수록 취향 있는 옷차림이 중요하다고 충고하기도 한다. 그런 말을 들으면 다소 공격적인 기분이 되어 “나는 취향 같은 거 없어요. 그런 거 신경 안 써요”라고 대답한다. 마음속으로는 촌스럽고 초라하다는 지적을 당한 거 같아 부끄럽다. 그렇지만 되묻고 싶기도 하다. “거의 모든 물건을 공장에서 대량으로 만들어내는 이런 세상에서, 이미지를 조작하고 조종하는 광고들로 넘쳐나는 이런 세상에서, 고유한 취향이라는 게 과연 있을까요?”

아마도 취향이란 어느 정도 “나는 이러저러한 사람이니 이러저러한 계층에 속해 있습니다. 혹은 그 계층에 속하고 싶습니다”라는 표현이 아닐까 싶다. 신문 기사 속에서 누군가의 벗겨진 프라다 구두 한 짝을 보면서 순정한 취향이란 무엇일까 생각해 보았다. 그건 오직 제 감각에 맞춰 만든 뒤 오래 신고 다녀 길들여진, 이 세상에 딱 하나밖에 없는 낡은 신발 같은 게 아닐까. 이제 그런 건 찾아보기도 힘들지만.

부희령(소설가), 삽화=공희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