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과 마음이 찢긴 채 슬픔만 남은 척박한 땅을 떠나지 않는 이유요? 바로 ‘순종’에 그 답이 있었습니다.”
지난달 31일 서울 양천구 CBS 사옥에서 만난 김동민 이주훈(CBS TV제작국 특집부) 감독은 두 곳의 사역현장에서 바라 본 선교사들을 하나의 시선으로 담아 냈다. 그 키워드는 ‘순종’이었다.
두 사람이 각각 찾아간 곳은 내전과 집단 학살, 강간 등으로 얼룩진 아프리카 우간다와 세 살배기 난민 아일란 쿠르디의 사진으로 시리아 난민 문제의 실상을 알려 준 중동의 레바논이었다.
먼저 발걸음을 뗀 것은 김 감독이었다. 그는 지난 3월 우간다로 향했다. 그곳엔 아버지 고(故) 김종성 목사의 뒤를 이어 우간다의 딩기디마을에서 어린이들을 위한 학교를 운영하는 김은혜(37·여) 선교사와 그의 남편 한성국(38) 선교사가 있었다. 물 부족에 시달리는 마을 주민들을 위해 우물을 파고, 꿈을 잃은 어린이들을 가르치는 김 선교사의 일상을 카메라에 오롯이 담았다. 김 감독의 시선은 양파의 껍질을 벗기듯 선교사의 삶 속으로 한 꺼풀 더 들어갔다.
“선교사님들을 우리와 DNA 자체가 다른 사람들이라고 생각해버리면 마음이 편하죠. 마치 다른 세계에서 온 천사 같은 존재처럼 말입니다. 하지만 사역 현장에서 바라 본 선교사님들은 우리와 다르지 않은 크리스천 한 사람이었어요. 그래서 들여다보면 볼수록 제 자신의 신앙을 돌아볼 수 있었죠.”(김 감독)
김 감독의 말대로 김은혜 선교사는 어느 날 하늘에서 우간다의 한 시골마을로 뚝 떨어진 것이 아니었다. 선교사로서의 천사 같은 사역자 이전에 그는 세계 각지에서 봉사하느라 가정을 등진 채 살았던 아버지의 딸이었다. 초코파이 하나로 끼니를 때우고 어머니가 외상으로 쌀과 연탄을 구하러 다니는 모습을 바라보며 아버지를 원망했던 소녀였다. 하지만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난 아버지의 뒤를 이어 우간다 딩기디마을을 지켜오면서 김 선교사는 그토록 원망했던 아버지가 자신의 삶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증명해왔다는 사실에 눈을 뜬다.
지난 5월 레바논을 향한 이 감독의 시선에는 안정적인 대기업을 그만두고 레바논 자흘레 난민촌에서 상처 입은 영혼들을 보듬어주고 있는 김영화(38) 선교사가 들어왔다. 내전으로 가족을 잃고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사람들에게 새로운 가족이 되어 주는 김 선교사를 영상에 담으며 이 감독은 “지구촌의 모든 선교사님들이 ‘순종’을 위해 가슴 속에 깊이 묻어두고 있는 것이 바로 ‘가족’이란 걸 알았다”고 고백했다.
“폐지를 주우시는 아버지, 몸이 불편한 어머니, 다운증후군을 앓고 있는 동생을 떠나 집안의 장손이 해외 선교활동을 펼치는 것은 세상말로 ‘미친 짓’일지 모릅니다. 하지만 김 선교사는 난민들에게 ‘여기에 있는 가족의 손을 잡아주기 위해 고향에 있는 가족을 잠시 떠난 것’이라고 고백하더군요. 우는 자들과 함께 울어주며 가족이 되어 준 것이 ‘순종’을 향한 첫 걸음이었던 겁니다.”
가늠조차 되지 않는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 그들의 삶을 통째로 품어 안으며 가족이 돼 주는 선교사들의 이야기를 보고 듣는 동안 제작 현장의 어려움들은 서서히 잊혀져 갔다. 이 감독은 “기본적인 안전조차 담보되지 않는 내전국의 공포감, 하루 15시간의 연속 촬영, 40도를 웃도는 폭염 등은 선교사들이 삶으로 보여 주는 ‘순종’ 앞에 점점 무뎌져 갔다”고 회상했다.
두 감독이 만난 선교 현장과 선교사들의 사실적 기록은 오는 17일 ‘순종’이란 이름의 영화로 관객들을 찾아간다. “내전의 아픔, 난민촌의 고통도 힘든 상황 이지만 시선을 대한민국으로 옮겨보면 ‘최순실 사태’ ‘세월호 문제’ 등 삶 속의 고난과 어려움은 동일 선상에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네 삶 가운데 같이 울고 손 잡아줘야 할 사람은 어디 있는지 돌아보는 일입니다. 그 의미를 전하는 선물이 됐으면 좋겠습니다.”(김 감독)
글=최기영 기자 ky710@kmib.co.kr, 사진=강민석 선임기자
“지옥을 보듬는 당신의 이름은 선교사입니다”
입력 2016-11-03 21: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