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기종의 환자 샤우팅] 유령수술도 모자라 양방수술 확대한다고…

입력 2016-11-06 20:18

최근 우리나라 수술실의 어두운 풍경이 ‘유령’과 ‘도사’라는 두 단어로 종종 묘사된다. 쉬운 말로 우리나라 수술실에 ‘유령의사’와 ‘도사의사’가 활동하고 있다는 얘기다. 유령의사가 하는 수술은 유령수술(ghost surgery)로, 도사의사가 하는 수술은 양방수술(Overlapping Surgery)로 불린다.

유령수술이란 수술실에서 전신마취제를 투여 받은 환자가 의식을 잃으면 처음 환자를 진찰하고, 수술계획을 세우고, 설명 후 동의까지 받고 직접 수술하기로 약속했던 집도의사는 수술에 참여하지 않고, 생면부지의 의사가 수술하는 것을 말한다. 이에 반해 양방수술이란 수술실에서 환자 두 명 이상을 동시에 또는 일부 겹쳐서 수술하면서 집도의사는 핵심부분만을 진행하는 수술을 말한다.

유령수술은 현행법상 당연히 사기죄로 형사처벌을 받고, 살인죄·상해죄의 성립여부도 최근 논쟁이 되고 있다. 그러나 양방수술은 현행법상 마땅한 형사처벌 규정이 없고, 의료현장에서는 오래된 관행이다. 천재지변이나 대형 참사가 발생해 다수의 긴급수술이 필요하거나 중증질환이 악화되어 생명이 위협받는 응급상황이 발생하면 양방수술 시행은 불가피하다.

그런데 의료현장의 의사들은 여기에 더해 양방수술은 환자들의 수술 대기시간을 단축시킬 수 있고, 수술팀과 수술실 운영을 최적화할 수 있고, 수련의나 전문의들에게 더 많은 수련의 기회를 제공할 수 있으며, 주간에 병리과·영상의학과·마취과 전문의들과의 협업을 가능하게 만들기 때문에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긴급한 상황이 아닌 경우까지 양방수술을 확대하는 것은 원칙적으로 안 된다. 만일 양방수술의 범위를 확대하기 위해서는 충분한 사회적 논의가 전제되어야 한다. 양방수술도 수술이기 때문에 최소한의 안전성은 담보되어야하기 때문이다. 한 수술실에서 환자들을 여러 침대에 눕혀놓고 양방수술을 한다거나, 수술실간 이동할 때 손을 씻지 않거나 가운을 갈아입지 않고 양방수술을 한다면 심각한 감염사고를 초래할 수 있다. 어떤 소문난 외과수술 명의처럼 하루에 양방수술을 4∼5회씩 무리해서 진행한다면 집도의사의 피로가 누적되어 심각한 의료사고를 발생시킬 수도 있다.

또한 양방수술이 허용되는 긴급 상황이라고 하더라도 핵심부분 수술만은 반드시 집도의사가 해야 한다. 핵심부분 수술을 이 수술실 저 수술실 옮겨 다니면서 한다면 아무리 능숙한 집도의사라고 하더라도 의료사고를 낼 위험이 커진다. 또한 집도의사의 고도의 숙련된 기술이 필요한 수술의 핵심부분의 범위를 함부로 축소해 숙련이 덜 된 보조의사에게 함부로 맡겨서는 안 된다. 이럴 경우 양방수술이 불법인 유령수술이 되기 때문이다. 양방수술과 유령수술은 백지 한 장 차이에 불과하다.

따라서 긴급한 상황에 양방수술이 허용되는 수술의 핵심부분 내용에 대해서는 관련 전문학회가 충분한 논의를 거쳐 마련해야 한다. 2016년 4월 미국외과학회(American College og Surgeons, ACS)에서도 양방수술 진행 시 수술팀의 집도의사는 동시에 핵심수술(Critical Portion of the Case)을 시행할 수 없도록 권고하였다.

정부는 양방수술이 수술 횟수를 늘여 병원 수익을 올리기 위한 수단으로 악용되지 않도록 관리감독도 강화해야 한다. 수술 대기자가 많은 대형병원들이 환자 2∼3명을 묶어서 양방수술을 기본으로 하는 수술시스템을 운영할 경우를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안기종(한국환자단체 연합회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