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 출간된 ‘제시의 일기’란 책이 있다. 중국 내 임시정부에서 활동했던 독립운동가 양우조·최선화 부부의 육아일기다. 일기는 1938년 중국 창사에서 딸 제시가 태어난 순간부터 광복 후 귀국하던 1946년까지 8년간 이어진다. 이 일기가 한국 근현대사를 주제로 장편만화 작업을 꾸준히 하고 있는 박건웅에 의해 ‘제시이야기’라는 만화로 재탄생했다.
‘제시이야기’는 무엇보다 감동적인 육아 이야기다. 미국 MIT에서 유학한 남편과 이화여전을 졸업한 부인, 부부는 최고 엘리트였지만 독립운동에 투신했다. 그들의 육아 환경이란 중일전쟁이 한창인 전쟁터였고, 끝없이 거주지를 옮겨야 하는 임시정부였다. 그러나 부부는 아이를 낳아 기르는 일에 정성을 다했고, 그 아이로부터 무한한 행복을 얻었다.
“언젠가 제시가 이 일기를 발견했을 때 나는 제시가 얼마나 사랑받았는지, 부모 된 이와 주변 사람들에게 얼마나 큰 기쁨을 주었는지를 느낄 수 있기 바란다. 그리고 그 기쁨을 계속 전하는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
해방의 전망은 암울했고 일상은 고됐지만 부부의 일기는 하루하루 감격과 감사로 가득하다. 독립운동이라는 대의와 아이의 양육 사이에서 때론 고뇌해야 했던 젊은 독립운동가의 내면도 숨김없이 드러낸다.
‘제시이야기’는 임시정부의 활동과 이동 경로, 요인들의 일상과 심리 등을 보여준다는 점에서도 의미를 가진다. 일본의 공습을 피해 임시정부가 충칭으로 이동하기까지의 과정을 시기별로 정확히 알려주는 거의 유일한 기록이다.
만화 속 주인공인 제시는 지난 2010년 세상을 떠났다. 제시의 딸인 김현주(미국 실리콘밸리학교 교장)씨는 미국 내 여러 주에서 교재로 채택한 일본 작가 가와시마 요코의 자전적 소설 ‘요코 이야기’의 역사 왜곡을 바로잡기 위해 ‘제시이야기’를 미 교육국 공식 도서로 지정하는 운동을 펼치고 있다.
김남중 기자
[책과 길] 만화로 보는 독립운동가 부부의 육아일기
입력 2016-11-03 17: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