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해 전 국민일보 지면에 ‘고고학으로 읽는 성서’가 연재될 때였다. 어느 여성 독자가 전화를 걸어왔다. 자신은 평생 교회를 다녔는데 마태복음 2장에서 죽은 헤롯왕이 왜 14장에 다시 등장하는지 궁금했다고 했다. 그런데 국민일보 연재물을 읽으면서 헤롯왕 사후에 아들들이 땅을 나눠가졌다는 걸 처음 알게 됐다는 내용이었다.
‘성경이 성경을 설명하도록 한다’는 게 성경 해석의 원칙이지만, 성경의 배경이 되는 시대를 알면 성경의 인물과 사건을 더 생동감 있게 느낄 수 있고 어렵던 구절도 이해되는 경우가 많다. 복음서에 등장하는 열심당과 바리세인, 총독과 분봉왕만 해도 신자들은 성경 본문만 읽어서는 어떤 이들인지 파악하기 어렵다. 성경에 등장하는 앗수르(앗시리아)가 요즘 국제 뉴스에 등장하는 시리아 땅에 있었고 바사가 페르시아, 애굽이 이집트를 일컫는 말이라는 사실조차 누가 일러줘야 알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요즘 기독교 출판계에서 성경 시대의 역사를 다룬 책들이 주목 받는 건 다행스러운 일이다. 조병호 목사의 ‘성경과 5대제국’이 2011년 발간된 뒤 지금까지도 기독교 분야의 베스트셀러로 널리 읽히고 있고, 성경공부 교재나 만화 등 다양한 형태로 성경의 배경 역사를 소개하는 책들이 출간되고 있다. 성경의 배경 역사를 읽는 고급 독자가 등장한 셈이다. 성경을 인문학적인 교양 차원에서 접하려는 비기독교인 독자들도 있다.
‘전쟁과 섭리’는 성서의 배경이 되는 고대 중근동 지역의 역사 중에서도 전쟁을 주제로 다룬 책이다. 지은이는 육군 장교 출신으로 국방대학원을 졸업한 군사전문가이자 교회사를 전공한 목사다. 이런 주제를 다루기에는 가장 적합한 필자로 보인다. 지은이는 서문에서 책을 쓴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구약의 전쟁사는 그 표현의 난해함으로 인해, 이성적 사고로 교육받은 현대인이 받아들이기에는 신화적이고 불가해한 요소가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이러한 이유로, 일부 신학자들조차 성경의 무오류성을 의심하며 본문 비평을 서슴지 않았고, 급기야 성경 본문의 동일 내용에 대해 다양한 해석이 일정한 기준점이 되었다. 이러한 시대적 조류에 맞서 이 책은 프랑스혁명 이후 각종 국제전쟁에서 도출된 경험칙에 의거하고, 동서고금의 전쟁술의 원칙이 된 제반 요소들을 고려하여 성경에 언급된 전쟁과 전투를 가능한 한 성경 원문에 충실하게 재구성했다.”
이 책은 성경의 주요 전쟁을 알기 쉽게 설명해준다. ‘아브라함부터 예루살렘 성 멸망까지’라는 부제처럼 이 책이 다루는 범위는 구약시대다. 지도도 곳곳에 배치했고 지형과 무기를 소개하는 시각자료도 풍부하다.
출애굽의 상황을 설명한 ‘이집트 탈출 작전’ 대목에선 히브리 민족의 이동 거리를 현대의 ㎞ 단위로 설명해 어떤 속도로 움직였는지 한눈에 파악할 수 있다. 구름기둥을 ‘차단 작전’, 홍해를 건넌 기적을 ‘도하작전’으로 명명하는 등 군사전문가로서의 면모를 잘 살려 당시의 전쟁을 잘 묘사하고 있다. 사실을 바탕으로 치밀하게 전투를 재구성했다. 앗시리아 제국의 탄생과 멸망, 신바빌로니아의 부상과 몰락 등 전쟁이 일어난 당대의 국제 정세도 지도와 함께 일목요연하게 정리했다.
지은이는 전쟁을 “하나님의 계획과 인간의 자유의지가 부딪히는 접촉점”으로 바라본다. 전쟁이 벌어지는 곳은 인간의 욕망과 공포가 표출되는 현장이다. 영웅과 악한이 등장하고, 거대한 군중의 운명이 뒤바뀐다. 인간은 당연히 승리와 패배에 주목한다. 하지만 하나님은 더 큰 역사의 물줄기 속에서 인간의 삶을 주관하고 당신의 뜻을 드러낸다.
다만 하나님의 섭리를 설명하는 내용이 풍유적(알레고리적)인 해석이나 종교적 교훈에 치우친 점은 다소 아쉽다. 역사에 실재했던 전쟁을 쉽게 개인의 영적 전쟁과 비교하기보다는, 인간의 욕망과 상상력을 초월해 역사를 주관하는 하나님의 모습을 보여주었으면 더 좋았겠다.
김지방 기자 fattykim@kmib.co.kr
‘이집트 탈출 작전’ 출애굽 히브리 민족은 몇 km 이동했을까
입력 2016-11-02 20: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