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崔-靑 커넥션’ 판도라 상자가 열린다

입력 2016-11-02 04:04

검찰 특별수사본부가 비선실세 국정농단 파문의 기폭제가 된 ‘최순실 태블릿PC’ 디지털 분석 작업을 완료했다. 검찰은 문제의 태블릿PC 실제 사용자가 최씨인 것으로 잠정 결론을 내렸다. 기기에 저장된 파일을 표면적으로만 삭제하고 방치해뒀던 것이 2년여가 지나 최씨를 침몰시키는 분수령이 됐다는 얘기다. 검찰은 태블릿PC 분석 결과를 토대로 대통령 연설문 등 청와대 내부 문건이 최씨 수중에 들어가기까지의 구체적 경위를 재구성하면서 사법처리 대상자를 선별할 방침이다.

“최순실의 태블릿PC가 맞다”

박근혜 대통령의 국내외 연설문과 외교·안보 문서 등이 담긴 태블릿PC(2012년 제작 삼성 갤럭시 탭)는 ‘최씨-청와대 커넥션’을 드러내는 핵심 물증이다. 수사본부 가동 전부터 디지털 포렌식(증거분석) 작업을 진행한 검찰은 최씨가 실사용자인 것으로 파악했다. 검찰 관계자는 1일 “별도의 지문 분석은 안 했지만 최씨 외 제3자가 사용한 흔적이 없다. 최씨 것이 아니라고 할 근거가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해당 태블릿PC에서는 최씨의 ‘셀카’ 사진과 외조카 등 친인척들 사진 다수가 발견된 상태다. 검찰은 김한수 청와대 뉴미디어비서관실 선임행정관이 홍보업체 ‘마레이컴퍼니’ 대표였던 2012년 6월 회사 명의로 개통한 것으로 특정했다. 이에 지난 29일 김 행정관 자택을 압수수색했으며, 김 행정관은 자진해서 검찰에 출석해 조사받았다. 김 행정관은 “태블릿PC 개통 직후 고(故) 이춘상 당시 박근혜 대선 후보 보좌관에게 줬다”고 진술했다. 2012년 12월 교통사고로 사망한 이 보좌관에 대한 조사는 불가능하지만 최씨는 개통 며칠 뒤부터 태블릿PC를 사용한 흔적을 남겼다.

태블릿PC 속 파일은 지워져 있었다

검찰은 최씨가 태블릿PC를 2012년 6월부터 2014년 3월까지 사용했던 것으로 본다. 이후에는 언론에 입수된 최근까지 작동되지 않았다는 게 검찰 판단이다. 검찰이 태블릿PC를 확보했을 당시 기기 내 파일은 모두 삭제돼 있었다. 최씨가 해당 태블릿PC를 2014년 3월 무렵 이후 사용하지 않으면서 눈에 보이는 파일을 모두 삭제한 뒤 방치해뒀을 개연성이 높다. 그러나 해당 기기에는 자동 백업 기능이 있어 태블릿PC 내부 저장 공간에 전송받은 자료가 그대로 남아 있어 비교적 쉽게 복구가 가능했다고 한다. 검찰 관계자는 “태블릿PC 파일을 없애면서 디가우징(데이터를 완전 삭제하는 것)까지는 대비를 못한 것 같다”고 말했다.

靑 문건 어떤 경로로 최씨에게 갔나

검찰이 태블릿PC 분석을 통해 기기 개통자, 문건 작성자, 최씨에게 전송한 인물 등에 대한 정보를 다수 확보했다. 검찰은 지난 29일 정호성 청와대 전 부속비서관 자택을 압수수색하고, 청와대 압수수색을 시도하면서 대상자로 정 전 비서관을 지목했다. 최씨 수중으로 청와대 문건들이 전송되는 길목에 정 전 비서관이 등장했다는 뜻이다. 최씨 태블릿PC에 저장된 문서들에는 최종 수정자로 정호성 청와대 부속비서관의 아이디 ‘narelo’가 네 차례 등장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조만간 정 전 비서관을 공무상 기밀누설 혐의 피의자로 불러 최씨에게 ‘제32회 국무회의 말씀 자료’ 등을 전송한 적이 있는지, 공모자는 없는지 등을 조사할 계획이다. 검찰 관계자는 “문건 유출 경로는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조사해봐야 한다”고 했다.

한편 태블릿PC를 입수해 보도한 JTBC는 국내 모처에서 구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한때 최씨가 머물던 독일 숙소에서 나왔다는 얘기도 있었지만 검찰은 “독일은 아닌 것 같다. 한국 어디에서 입수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최씨 “내 것 아니다”, 왜?

최씨는 자진귀국한 뒤에도 변호인을 통해 “태블릿PC는 내 것이 아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는 향후 디지털 자료의 증거능력에 대한 법리 공방도 대비한 포석으로 해석된다. 대법원은 지난해 7월 대선·정치개입 혐의로 기소된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에게 유죄를 선고한 원심을 파기했는데, 이메일에서 발견된 파일을 증거로 인정할 수 없다는 게 주된 취지였다. 해당 국정원 직원은 재판에서 “내가 작성한 게 아니다”고 버텼었다. 하지만 지난 5월 디지털 증거능력을 확대하는 형사소송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해 디지털 포렌식 수사와 감정 등을 통해 로그 기록, IP 주소 등 작성 사실을 입증하면 증거로 사용할 수 있게 된 상황이다.












지호일 이경원 기자 blue51@kmib.co.kr, 그래픽=안지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