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환(28·두산 베어스)은 올해 정규리그에서 곰 군단의 4번 타자로 위용을 떨쳤다. 타율 0.325 37홈런 124타점으로 거포 이미지를 굳혔고, 패넌트레이스 우승에 기여한 일등공신이 됐다. 단 한 가지 우려가 있었다. 가을야구 경험 부족이다. 그러나 그는 보란듯이 한국시리즈 1, 2차전에서 공수에 걸쳐 맹활약을 펼치며 두산의 2연패를 향한 선봉장 역할을 하고 있다. 지긋지긋하게 따라다니던 ‘약물’이라는 딱지와의 작별도 예고했다.
김재현의 가슴 한켠에는 늘 무거운 꼬리표가 따라다녔다. 2011년 야구월드컵 당시 도핑 검사에서 애너볼릭 스테로이드 검출로 적발된 전력 때문이다. 벌써 5년이 흘렀다. 제 실력을 뽐내도 그를 향한 비난은 쉽게 가시지 않았다. 되돌리고픈 과거를 지울 방법도 없었다. 야구선수로서 매 경기에 집중하고 팬들에게 좋은 경기를 보여주는 게 최선이었다. 그는 올해 커리어하이 활약을 펼치며 화려하게 부활했다. 평생 지고 다녀야할 주홍글씨를 가슴에 새긴 채 묵묵히 제 역할을 수행한 결과였다.
한국시리즈를 앞둔 두산 김태형 감독은 “우리 선수들 중에 김재환 빼고는 모두 포스트시즌 경험이 풍부하다”고 말했다. 김재환은 생애 첫 한국시리즈를 치르고 있다. 이전까지는 2012시즌 준플레이오프에서 1차례 경기에 나선 게 가을야구 경험의 전부였다. 그럼에도 김 감독은 “김재환은 4번 타자 고정”이라며 믿고 중용했다. 두산은 한국시리즈 2차전에서 중심타선의 변화를 줬다. 하지만 김재환은 김 감독의 말대로 오로지 4번 타순에만 고정됐다.
사실 부족한 경험만이 걱정거리는 아니었다. 김재환은 원래 포수 출신이다. 올 시즌 4번 타자로 나서면서 좌익수로 변신했다. 정규시즌 때 아찔한 수비 실수로 팀을 당혹케 하는 경우도 있었다. 우승을 목전에 둔 한국시리즈인 만큼 수비 실수 하나가 한 경기를 좌지우지하는 치명타로 작용할 수 있다. 때문에 무작정 안심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김 감독은 “수비도 믿음이 있다. (정)수빈이보다는 아니지만 잘한다. 중간중간 실수가 있었지만 무너지지 않고 지금까지 왔다”며 김재환의 수비 능력에 신뢰를 보냈다.
김재환은 지난달 29일 열린 한국시리즈 1차전에서 4번 타자 겸 좌익수로 나섰다. 그는 보란 듯이 2회말 첫 타석부터 안타를 때려냈다. 두산의 한국시리즈 첫 안타였다. 득점과 연결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김재환이 포문을 연 덕분에 두산 타선은 긴장을 풀었고, 팽팽한 투수전 속에서도 11개의 안타를 터뜨렸다. 우려했던 수비도 나쁘지 않았다.
그로부터 하루 뒤 열린 한국시리즈 2차전은 그야말로 김재환의 독무대였다. 4타수 2안타 1홈런 1타점으로 활약했다. 김재환은 4회말 무사 주자 1루 상황에서 안타로 방망이를 달궜다. 두산은 이후 닉 에반스의 안타, 양의지의 적시타로 선취점을 뽑았다.
김재환은 두산이 2-1로 역전한 8회말 NC 다이노스 선발투수 에릭 해커를 상대로 솔로포를 쏘아 올렸다. 양 팀 통틀어 한국시리즈 첫 홈런이자 승리를 부른 쐐기포였다. 4번 타자의 역할이 무엇인지를 제대로 보여준 셈이다. 그는 시리즈 2차전까지 타율 0.333(9타수 3안타)으로 고공행진 중이다. 1, 2차전 승리로 연승을 달린 두산은 88%(17번 중 15번)의 한국시리즈 우승 확률을 가져왔다.
수비에서도 만점 활약을 펼쳤다. 2차전 9회초 무사 1루 위기에서 그림 같은 ‘슈퍼 캐치’를 선보였다. NC 외국인 에릭 테임즈의 타구가 김재환이 지키는 좌측 담장을 향해 날아왔다. 김재환은 타구를 응시하며 끝까지 쫓아갔다. 그리고는 담장을 향해 몸을 부딪히며 글러브 안으로 공을 빨아들였다. 그렇게 NC의 마지막 추격 의지마저 단숨에 꺾어버렸다.
두산은 올 시즌 한국시리즈 2연패와 더불어 21년 만의 통합 우승에 도전한다. 김재환으로선 마음의 무거운 짐을 덜고 한국을 대표하는 진정한 거포에 오를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마지막을 향해 치닫는 가을야구에서 그동안 그가 들였던 노력들이 실력이라는 이름으로 값어치를 인정받을 수 있을지 주목된다.
박구인 기자 captain@kmib.co.kr
‘약물 꼬리표’, 실력으로 떼어낸다… 김재환, 곰 군단 4번타자 위용
입력 2016-11-02 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