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알의 기적 <4>] “염소 선물로 자립 희망 줬지만 애타는 손짓이 눈에 밟혀”

입력 2016-11-01 21:16
배익환 목사가 지난달 26일(현지시간) 아프리카 잠비아 카인두 지역에 있는 시핀두 올리버(오른쪽)씨 집을 방문해 염소를 선물한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전날 이 지역 무스카마베초등학교를 찾았을 때 아이들이 손을 흔들며 밀알의기적 모니터링 방문단을 환영하는 모습.
잠비아 뭄브와에 있는 월드비전 현지 관계자들이 지난달 25일(현지시간) 사무소 앞에서 단체사진을 찍고 있다.
배익환(68·인천 제자감리교회) 목사는 지난달 25일(현지시간) 아프리카 잠비아 카인두 지역을 찾았다. 수도 루사카에서 차를 타고 북서쪽으로 170㎞를 달려야 나오는 지구촌의 오지였다. 배 목사가 이날 찾은 장소 중 한 곳은 지니 카핀(62·여)씨의 집. 배 목사는 마당에 들어서자마자 한숨부터 내쉬었다.

카핀씨의 집은 짚 흙 나무 등으로 얼기설기 지은 흙집이었다. 매년 11월부터 6개월간 이어지는 우기(雨期)를 이겨낼 수 있을지 걱정될 정도로 가옥의 만듦새는 형편없었다. 배 목사는 "비가 오면 빗물이 바닥으로 흘러들어오고 지붕도 샐 것 같은데 어떡하냐"면서 안타까워했다.

카핀씨의 가족은 그를 포함해 아들 손자 손녀 등 총 6명이었다. 생계를 어떻게 해결하는지 묻자 카핀씨는 "밭농사를 짓고 이웃들 잡일도 거들어주면서 근근이 살아간다"고 답했다. 이어 "1년 수입이 150달러도 안 된다"며 "돈 버는 게 세상에서 가장 힘든 거 같다"고 했다.

하지만 이날 배 목사가 전달할 선물이 도착하자 카핀씨의 표정은 순식간에 밝아졌다. 배 목사가 준비한 것은 염소. 궁핍한 이들 가족에겐 언감생심 꿈도 꿀 수 없는 큰 선물이었다. 아들 제임스 샤칸두(20)씨는 "염소를 자식처럼 생각하면서 열심히 기를 것"이라며 환한 미소를 지었다.



염소로 전한 사랑

아프리카 중남부에 위치한 잠비아는 대표적인 빈곤국 중 하나다. 인구의 절반 이상은 하루 소득이 2달러에도 못 미친다. 자연환경이 척박하고 농업기술도 미비해 만성적인 식량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

배 목사는 지난달 23∼29일 월드비전 밀알의기적 모니터링 방문단의 일원으로 잠비아를 찾았다. 그는 카핀씨 가정을 비롯해 카인두 지역 가정 3곳에 총 5마리의 염소를 전달했다. 염소를 길러 가계에 보탬이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이들 가구는 1년 소득이 150달러 안팎인 극빈층이었다. 잠비아에서 염소 한 마리의 가격이 35달러 수준인 것을 감안하면 수개월치 수입에 맞먹는 큰 선물을 전달한 셈이다.

시핀두 올리버(43)씨도 염소를 선물 받은 주인공 중 한 명이었다. 배 목사는 카핀씨에게 염소를 선물한 이튿날 올리버씨 집을 방문해 염소 암수 한 쌍을 선물했다. 올리버씨의 가족은 아내와 자식, 조카 등 총 6명. 그는 "염소를 선물 받아 너무 행복하다"며 연신 웃었다.

"지금까지 염소를 길러본 적은 한 번도 없어요. 정말 잘 키워서 염소를 판 돈으로 아이들을 학교에도 보내고 싶어요. 돈이 없어 학교에 못 보내고 있거든요. 정말 감사하다는 생각밖에 안 드네요."

뜻밖의 선물을 받은 사람들은 배 목사가 차를 타고 마을을 벗어날 때까지 손을 흔들었다. 하지만 배 목사의 표정이 좋아보였던 것만은 아니었다. 숙소에 돌아왔을 때 배 목사는 "모든 사람을 다 도와줄 수 없는 현실이 안타깝다"며 아쉬워했다.

"선물을 줬으면 흐뭇해야 하는데 그렇지 않네요. 무엇보다 많은 사람들이 꿈도 없어 보이는 것 같아 마음이 아팠어요. 눈빛이 초롱초롱한 건 아이들밖에 없더군요. 한국교회가 이곳 아이들을 후원하는 일에 적극 동참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열악한 삶, 그 속에서 찾는 희망

잠비아는 각종 질병으로 고통 받고 있는 국가다. 에이즈 감염률은 13%에 달하고 비위생적인 주거환경 탓에 수인성 전염병에 시달리는 이들도 많다. 교육환경 역시 열악하다. 우기에는 도로사정이 악화돼 많은 아이들이 통학에 어려움을 겪는다. 교사 1인당 학생 수는 70명에 달한다.

한국월드비전은 카인두 지역을 위해 적극적인 지원 활동을 전개해왔다. 학교나 보건소를 짓고 책걸상 등을 지원하는 사업이 대표적이다. 25일 밀알의기적 방문단이 찾은 무스카마베초등학교도 한국월드비전의 후원 덕분에 교육환경이 크게 개선된 곳 중 하나다.

2002년 개교한 무스카마베초등학교는 교사(校舍)도 없는 학교였다. 하지만 한국월드비전이 2008년에 우물을, 2014년에 화장실을 지었고, 올초에는 교실 6개를 갖춘 건물을 건립했다. 2009년부터 이곳에서 교편을 잡고 있는 데릭 함수과(23)씨는 "한국월드비전의 지원 덕분에 학교가 점점 좋아지고 있다"며 감사의 뜻을 전했다. 하지만 "전교생이 450명에 달해 여전히 교실이 부족한 상황"이라며 "잠비아 아이들에게 관심과 지원을 부탁드린다"고 했다.

배 목사는 학교를 방문한 자리에서 학생들에게 노트 볼펜 자 등 학용품을 전달했다. 그는 "나무 아래에서 수업을 받고 있는 아이들 모습을 영원히 잊지 못할 것 같다"고 거듭 말했다.

"아이들을 보면서 '흔들리며 피는 꽃'이라는 문구가 계속 생각났어요. 이곳에서 만난 아이들이 힘든 상황을 이겨내길 기도할 겁니다. 이 아이들을 도와야 한다는 막중한 책임감을 느낍니다."

■교육·보건·소득증대 사업으로 주민들 삶에 숨통

지난달 25일(현지시간) 찾은 잠비아의 지방도시 뭄브와. 수도 루사카에서 북서쪽으로 120㎞ 떨어진 이 도시에 월드비전 간판을 내건 작은 건물이 있었다. 월드비전이 뭄브와 및 카인두 지역에서 다양한 지역개발사업(ADP)을 전개하는 거점이자 사무소였다.

사무소가 벌이는 사업의 내용은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학교를 지어주고 학용품을 지원하는 교육사업, 비누와 모기장을 전달하고 에이즈로 인해 부모를 잃은 결손가정 아이들을 돌보는 보건사업, 각종 농업기술을 가르치고 농작물 종자나 농기구를 지원하는 소득증대사업 등이 대표적이었다.

사무소에서 만난 월드비전 현지 관계자들은 “월드비전의 활동이 큰 성과를 거두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헨리 시팅가(31)씨는 “식수 환경이 개선됐고 주민들의 영양 상태도 좋아졌다. 무엇보다 이 지역의 분위기가 달라졌다. 주민들의 자립 의지가 높아졌다”고 자평했다.

뭄브와 및 카인두 ADP 관계자들이 공동으로 사용하는 이 사무소는 한국월드비전의 후원을 받아 2005년 세워진 곳이었다. 사업기간은 2025년까지 20년. 이미 반환점을 돈 셈이었다. 가장 오래 근무한 직원은 2008년부터 일하고 있는 벤슨 짐브웨(58)씨였다.

“2005년 이전만 하더라도 형편이 어렵거나 부모들의 교육열이 떨어져 학교에 진학하지 못하는 아이가 많았어요. 하지만 지금은 다릅니다. 정규 교육을 받는 아이들이 크게 늘었고, 문맹률도 떨어졌어요. 매년 1∼2월은 춘궁기여서 식량부족 현상이 심각했는데 이 문제 역시 많이 개선됐습니다.”

이들이 품은 목표는 단 하나였다. 월드비전의 사업이 끝난 뒤에도 주민들이 지금과 같은 삶을 이어갈 수 있도록 역량을 길러주는 것이었다. 시팅가씨는 “아직 사업 기간이 많이 남아 있지만 우리는 월드비전이 떠난 뒤를 생각하고 있다”며 “주민들이 자립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드는 것이 가장 중요한 숙제다. 앞으로는 이 점에 집중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카인두(잠비아)=글·사진 박지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