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막 뒤 ‘비선실세’ 최순실(60)씨가 국민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쏟아지는 카메라 플래시 속에서 그는 벙거지 모자와 스카프, 그리고 자기 손으로 얼굴을 싸매기 급급했다. 지난 4년간 청와대 외곽에서 청와대를 주물렀다는 권력자의 위세는 성난 민심에 벗겨져 버리고, 비로소 껍질 속 본모습을 내보인 듯했다.
최씨는 31일 특별수사본부 출석을 앞두고 검찰에 신변보호 요청을 했다. “테러를 당할까 두렵다”는 뜻을 전했다고 한다. 오후 2시58분 서울중앙지검 청사에 도착한 에쿠스 차량에서 최씨가 내리자 시민단체 회원들의 고함이 터져 나왔다. “최순실 구속! 박근혜 하야!”
사전에 약속된 취재 경계선은 한순간에 무너졌다. 최씨는 검찰 직원 10여명의 경호를 받으며 간신히 포토라인에 섰다. 2014년 12월 그의 전 남편 정윤회(61)씨가 국정개입 의혹 수사로 검찰에 나왔을 때 섰던 바로 그 지점이었다. 정씨는 “불장난에 춤춘 사람들이 누군지 다 밝혀질 것”이라며 오만함이 섞인 발언을 했었다. 그러나 2년이 지나 ‘무대’에 오른 최씨는 손으로 입을 가린 채 위축된 얼굴을 가리려 애썼다. 뉴스에 얼굴이 공개되는 살인사건의 범인이라도 된 듯 고개를 파묻었다. 그저 자신을 에워싼 수백명의 인파에 이리저리 치이면서 청사 안으로 떠밀려 들어갔다. 그 순간 누군가가 던진 개똥이 건물 유리창에 날아들었다. 자신이 초래한 국정 혼란만큼의 혼돈 상황이 검찰청사 현관 앞에서 빚어졌다.
주인을 잃은 최씨의 검은색 신발 한 짝이 바닥에 나뒹굴었다. ‘프라다’라는 로고가 박혀 있었다. 그는 기진맥진해 수사관들의 부축을 받아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쓰고 왔던 모자와 안경은 어디론가 사라진 채였다. ‘국민들께 한 말씀만 해 달라’는 취재진을 향해 최씨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죽을죄를 지었습니다”라고 두 번 말했다. 이어 “국민 여러분 용서해주세요. 죄송합니다”라고 했다. 흐느끼고 있었다.
최씨 조사는 형사8부가 있는 7층 영상조사실에서 진행됐다. 검찰은 7층의 출입문 작동을 차단해 외부인의 접근을 막았다. 최씨가 살면 검찰이 죽는 상황에서 그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는 정해진 수순이다. 최씨가 주역인 국정농단의 실체와 여기에서 파생된 각종 불법행위, 국민이 아닌 그를 위해 복무한 공직자들에 대한 ‘단죄의 시간’이 예고돼 있다. 포토라인에서 엘리베이터까지 3분 남짓, 겁먹은 얼굴의 실세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반성, 체념, 회한이었을까. 아니면 발아래로 보던 대중을 향한 분노였을까.
지호일 사회부 차장 blue51@kmib.co.kr
[현장기자-지호일] ‘위세의 가면’을 벗다
입력 2016-11-01 00: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