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대 후반 한국 여자골프에서 신지애(28)는 그야말로 ‘지존’이었다. 2006년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 평균타수가 69.72타였다. 이듬해엔 KLPGA 투어 9승을 거뒀다. 이 두 개 모두 아직 깨지지 않는 기록이다. 당시 마지막 날 상위권에 그의 이름이 있으면 우승은 ‘따논 당상’이었다. 그래서 ‘파이널 퀸’이라 불렸다. 정확한 샷과 퍼팅 능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2008년 신지애는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정식 멤버가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10개 대회에 출전해 3승을 따내며 세계를 놀라게 했다. 메이저대회인 브리티시 여자오픈 우승컵까지 들어올렸다.
당연히 2009년 LPGA 투어 정식 멤버로 화려하게 비상했다. 그 해 3승을 올리며 투어 신인왕과 상금왕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2010년엔 아시아 선수 최초로 세계랭킹 1위에 오르며 여자 골프 무대를 평정했다.
하지만 세계랭킹 1위에 오른 그 때가 불과 스물 두 살이었다. 너무 빨리 모든 걸 이루자 공허함이 찾아왔다. 그때부터 ‘외도’를 하기 시작했다. 라식수술로 트레이드 마크인 안경을 벗었다. 무리하게 체중을 감량했다. 이뻐지고 싶어서 였다. 특히 체중 감량은 엄청난 역효과를 불러일으켰다. 안 그래도 티샷 거리가 다른 투어선수들보다 짧았는데 6㎏를 감량하자 거리는 더욱 줄었다. 2011년 그의 드라이버 평균 비거리는 247.7야드로 LPGA 투어 전체에서 74등까지 떨어졌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스윙교정에 매달렸다. 슬럼프에서 벗어나기 위해 글렌 도허티를 새 코치로 영입해 스윙을 교정했지만 효과를 보지 못했다. 소위 남자 스윙이라는 파워 스윙으로 몸에 무리가 와 허리 부상까지 당했다. 스윙 감각도 떨어졌다. 먼 거리를 돌아다녀야 하는 LPGA 투어에서 여유를 찾을 수도 없었다. 결국 신지애는 2010년 이후 2년여 동안 단 한 개의 우승트로피도 들어 올리지 못하며 잊혀진 선수가 됐다.
신지애는 어린 시절 가졌던 각오를 되살렸다. 중학교 3학년 때 어머니가 교통사고로 돌아가신 가슴 아픈 가정사를 가지고 있다. 같은 차에 탔던 동생들도 1년 동안 중환자실에 누워있었다. 집이 부유하지 못했기에 그는 어머니 사망 보험금으로 받은 1700만원으로 골프를 했다. 신지애는 당시 “우리 집을 살리고 일으킬 수 있는 건 골프밖에 없다고 생각했고, 연습에 더욱 열중했다”고 회고하기도 했다.
다시 초심으로 돌아간 신지애는 먼저 평정심을 되찾는데 ‘올인’했다. 스윙도 자신의 감각을 믿고 간결하게 했다. 마음의 여유를 찾기 위해 콘서트에 가기도 했다. 자기 반성도 했다. 그는 “LPGA 투어에서 뛰었을 때 내가 인간적으로 성숙하지 못했고, 어린 생각으로 운동만 했다는 느낌이 들었다”고 고백한 바 있다.
결국 마음을 다잡은 신지애는 2012년 9월 9차 연장까지 가는 접전 끝에 LPGA 투어 킹스밀 챔피언십에서 우승했다. 22개월 만에 품에 안은 우승컵이었다.
이후 신지애는 욕심을 버렸다. 2014년 LPGA 투어 카드를 반납하고 일본여자프로골프(JLPGA) 투어에 뛰어 들었다. 비거리 부담도 없고, 골프장 이동 거리도 비교적 짧은 JLPGA 투어가 자신에게 맞다고 생각하고 과감하게 LPGA 투어를 포기했다.
JLPGA 투어에서 신지애는 이전의 명성을 되찾았다. 신지애는 30일 일본 사이타마현 무사시가오카 골프클럽(파72·6580야드)에서 열린 JLPGA 투어 히구치 히사코 미쓰비시 전기 레이디스 대회에서 최종합계 9언더파 207타로 우승을 차지했다. 시즌 3승을 올린 신지애는 JLPGA 투어 통산 승수를 13승으로 늘렸다.
특히 신지애는 이번 대회 우승으로 사상 최초의 한·미·일 상금왕이라는 타이틀에 도전할 수 있게 됐다. 신지애는 이번 우승으로 시즌 상금 1억2932만엔이 돼 상금 랭킹 2위로 올라섰다. 1위는 1억5477만 엔을 쌓은 한국의 이보미(28)다. 신지애는 “일본 투어에 오게 된 가장 큰 이유가 상금왕을 하기 위해서였다”며 “이제 남은 4개 대회에서 집중력을 발휘해 오늘 같은 좋은 플레이를 하겠다”고 다짐했다.
모규엽 기자 hirte@kmib.co.kr
‘딴마음’ 품었던 파이널 퀸, 초심으로 부활
입력 2016-11-01 00: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