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12일 경주 지역에서 발생한 규모 5.8의 지진과 이후 480회 넘는 여진으로 많은 국민이 불안해하고 있다. 1978년 기상청 지진 관측 이후 한반도에서 발생한 최대 지진을 경주에서 직접 경험한 필자는 거대한 자연현상에 대한 경외감마저 들었다. 땅속 깊은 곳에서 일어나는 지진이라는 자연현상을 온전하게 이해하고, 언제 어디서 얼마만큼 크기의 지진이 발생할지를 예측하기란 쉽지 않다. 사람들은 예측 불가능한 상황에 직면하면 더 큰 불안과 두려움을 느낀다. 일례로 태풍 ‘차바’가 지진보다 더 큰 피해를 가져왔지만 사람들이 태풍보다 지진을 더 두려워하는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인류는 무작위적으로 발생하고 불확실성이 높은 지진에 대비하여 생명과 재산을 지키고자 다양한 노력을 기울여 왔다. 과학기술의 발전을 토대로 내진설계 기술을 각종 시설물에 적용함으로써 소기의 성과를 달성하고 있지만, 내진설계 기술을 향상시키려는 노력은 계속 진행 중이다. 내진설계는 땅속 진원지에서 발생한 지진으로 인한 지진파가 지표면에 도달했을 때 그 지표 위에 서 있는 시설물이 안전하도록 설계하는 것을 말한다.
혹자는 그 어떠한 강력한 지진이 발생하더라도 끄떡없는 시설물을 상상할 수도 있겠지만 발생 확률이 매우 낮은 강력한 지진에 대비하여 많은 비용과 노력을 들이기는 쉽지 않다. 현실에서 모든 투자는 항상 경제성과 밀접한 관계를 지니기 때문이다. 내진설계만 놓고 보면 원전은 가장 비경제적인 설계를 한다. 일반 시설물은 지진이 오더라도 붕괴돼 인명피해가 발생하지 않는 수준을 설계 목표로 설정하는 반면 원전은 지진 발생 시에도 건물과 설비가 정상상태를 유지하도록 설계 목표를 설정한다. 일반시설물 내진설계 범위가 주로 구조물에만 국한되는 반면 원전의 내진설계는 구조물은 물론 원전을 구성하는 설비와 부속품까지 철저한 내진 검증을 거쳐 안전성을 확보한다. 이러한 원전 내진설계의 우수성은 해외 원전 사례를 살펴보면 금방 알 수 있다.
2011년 8월 30일 미국 버지니아주에 규모 5.8의 지진이 발생해 진앙지 인근 노스 아나(North Anna) 발전소에 내진설계 기준을 초과하는 지진파가 전달되었을 때도 발전소는 아무런 피해를 입지 않았다. 2007년 7월 16일 일본 니가타에서 발생한 지진으로 인근 가시와자키 가리와 원전에 설계기준을 초과하는 지진파가 전달됐지만 원전의 안전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았던 사례는 원전 내진설계의 안전성을 말해주고 있다. 2011년 3월 11일 발생한 규모 9.0의 동일본 대지진 때도 후쿠시마 원전은 지진으로 인한 피해는 없었지만, 지진발생 후 발전소에 닥친 지진해일로 인해 발전소가 불안정한 상태로 변했다. 진앙지로부터 후쿠시마 원전과 유사한 거리에 떨어져 있는 오나가와 원전은 해안방벽이 설치돼 있어 대지진의 영향을 전혀 받지 않았다. 이처럼 원전의 내진설계는 안전성과 신뢰성이 충분히 확보되고 있다.
우리나라는 지진 발생이 상대적으로 적고 발생하더라도 규모가 크지 않아 원전 설계기준을 초과하는 지진을 경험한 적이 없다. 하지만 필자가 근무하는 한수원은 국내 원전의 지진 안전성을 강화하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내진성능 보강을 통해 설계에 고려된 지진보다 더 큰 지진이 오더라도 견딜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하고 있으며, 주기적인 내진 안전성 평가를 통해 취약 부위가 있는지 점검하고 필요에 따라 보강공사도 시행하고 있다. 원전의 안전에 관계되면 프린터, 책상, 개인 캐비닛까지 모두 내진 보강하여 철저한 대비를 하고 있다. 많은 사람이 지진하면 원전을 걱정하지만 원전은 국내의 어떠한 시설물보다 지진에 대해 안전하다.
이종호 한국수력원자력 기술본부장
[기고-이종호] 지진 대비 원자력 안전
입력 2016-10-31 18:58